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한 마리 새가 열린 베란다 창을 통해 날아들었다. 순간 어쩌나 싶었다. 잠시 베란다 빨랫대 위에 앉아 주변을 살피는 듯 대록대록 눈알을 굴린다. 갑자기 부산해졌다. 제 터전이 아님을 알았던지 후드득, 후드득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베란다 창에 부딪치고 벽에 부딪치고 온 몸으로 부딪혔다.

결국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버둥거리고 있다. 다리라도 부러졌을까 걱정이 되었다. 조심스레 다가가려는데 알아 차렸는지 기력을 다해 푸드득이며 자리를 피하려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가던 길을 멈추었다. 겨우 문설주에 기대앉은 작은 새! 그 속에 내가 앉아 있다. 조심스레 베란다 창을 한 쪽으로 완전히 밀어 놓았다. 몇 번의 날개 짓으로 날아올랐다. 제 살던 곳으로 하나의 점이 되어 날아가는 새를 따라 나도 까마득히 날아오른다.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편리해지는 반면, 더욱 더 복잡해져가는 삶이다. 그럴수록 물질의 자존은 점점 높아져 간다. 어제 지어 진 아파트에 살던 내가, 오늘 지어놓은 아파트로 이사한 친구를 찾아갔다. 조경이 멋진 아파트 정원을 따라 지하주차장 입구를 발견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지하 통로 문을 열려고 동, 호수를 확인한 뒤 매미처럼 벽에 붙은 전자 숫자판에 숫자를 눌렀다. 말없는 숫자판은 나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점점 복잡해져가는 세상은 정확하지 않으면 집도 찾아 가기가 쉽지 않았다. 희뿌연한 벽과 시멘트 냄새만 가득한 지하 주차장 탈출은 결국, 주머니속의 작은 기계, 핸드폰의 숫자로 도움을 요청했다.

한 치의 오차도, 숫자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다. 삶속에서의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점점 더 낯설어져간다. 물기하나 없이 먼지 풀풀 일어나는 마른땅을 밟고 서있는 기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호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위, 아래 층 역시 모른다. 어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간단한 인사치레와 목례가 전부다. 서로 바쁘다보니, 서로 상관 할 바 아니니, 서로 알려고도 안하고 친해 보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서로를 참견 할 만큼의 여유가 없는 이 시대다. 그러나 참 편리 한 세상이다. 수치를 기계적으로 나타내는 디지털 시대이니, 눈앞에 형상이 없어도 숫자만 꾹꾹 누르면 먹고, 입고, 생활에 필요 한 것들이 앉아서 해결된다. 그런 세상이어서 나는 더욱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세상만물은 아날로그에서부터 표현이 되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변화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 길 잃은 새 한 마리, 오늘은 숲에 있을까? 아니면 어느 도심 아파트 베란다에서 또, 헤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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