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충청의창
마을이 콘텐츠다_ 두모리에서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14  15:47:5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충청의 창]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가을의 길목에서 드넓은 들녘을 본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의 끝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들녘 끝에 사는 자의 가을은 행복한가. 진한 땀방울 흘리며, 달달한 추억을 만들며 고요한 저녁을 맞고 있는가. 나는 가을의 길목에서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어떤 시를 쓰고 있는가. 내가 흘린 땀은 유용한가.

마음이 쓸쓸할 때는 길을 나선다. 굳이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 가는대로 차를 몰거나 길을 걷거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한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의 마력을 갖고 있다. 가을은 더욱 그렇다.

청주 문의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0리를 달렸을까. 대청호를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두세두세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니 ‘두모리1구 두모실’이라는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들녘을 보니 현기증이 난다. 들녘의 끝에 마을이 있다. 꼬창뫼라는 이름을 가진 높고 깊은 산을 품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600년 된 느티나무와 400년 수령의 팽나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신령스러움이 끼쳐온다.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다. 나무는 갈색으로 하나 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오랜 세월 이 마을을 지켜왔을 터이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이야기와 상처와 희망을 품고 있다. 이 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이 다투기도 했을 것이고 사랑의 언약을 맺기도 했을 것이다. 먹고 살겠다며 봇짐을 싸고 마을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르신나무는 단 한 번도 천기누설을 하지 않았다.

두모리 1구인 두모실은 이런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청나라 지사 두사충이 청나라 장군 이어성을 따라 이 일대를 지나다가 구룡산 자락의 고창산 앞에 펼쳐진 터를 보고 부자터라며 좋아 춤을 추었다. 그 때부터 이 마을을 두무실(杜舞室) 또는 두모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마을은 깊은 산속의 마을이지만 앞뜰이 기름지고 먹거리가 풍부해 살만했다. 함씨, 임씨, 허씨, 김씨 등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마을에 민가는 대부분 70년 이상의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대문, 안채, 사랑채, 장독대, 텃밭, 외양간 등 충청도의 농경문화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세월의 풍상이 가득한 돌담이 가득하니 오가는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하다. 우물과 빨래터와 계곡이 함께하니 애틋하고 정겹기만 하다. 붉게 익어가는 홍시와 대추, 고추와 무와 배추 모두 실실하다. 마을 사람들은 농경을 경전처럼 여기며 대대손손 살아오고 있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