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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꽃을 바라보며김춘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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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9  13: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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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춘자 수필가

유년시절 땅따먹기를 하듯 조금씩 늘여놓았던 전답의 할머니가 되어 땅에 노예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퇴직한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농작물을 가꿔보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한 해 농사를 지어보니 손이 많이 가고 힘에 부친다. 경작하기 쉬운 농작물을 고르다보니 고구마였다. 게으른 내가 재배하기 알맞은 작물이다.

고구마 심는 기구가 비닐을 뚫고 고구마순과 함께 흙속을 들랑날랑하며 이랑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뒤따라가며 물을 주고 바람이 들까 꾹꾹 눌러 주었다. 질땅이라 고구마 순을 심는 것도 팔이 아파온다. 땀 흘린 수고한 만큼 수확 할 수 있을 까 반신반의했다. 금년은 예년에 비해 가뭄이 심한 편이었다.

고구마를 심은 밭이 궁금하여 도착하니 고구마 싹은 보이지 않고 비닐에 계란부침이 되어 있었다. 빈 밭으로 두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다시 심자니 같은 상황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생각다 못해 조치원 시장에서 싹을 구입하여 계란부침이 된 고구마 싹 옆으로 물을 주며 이랑을 다시 메웠다. 이번에는 뿌리가 잘 내려 주길 바랐다. 얼마 후에 보니 모종한 고구마가 가뭄을 극복하고 줄기가 땅바닥을 덮으며 자라고 있었다. 땅속에서는 덩이뿌리가 굵어지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아기가 자라듯이 뿌듯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 밭에 가보니 고라니가 뻗어가는 줄기를 밭을 매듯이 이랑을 따라 거의 다 뜯어먹고 없었다. 망으로 울타리를 쳤다. 지나가던 어르신이 웃으시며 싹이 없는 고구마는 수확이 어려운데 헛수고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구마의 수확시기인 6월 중순에 다시 고구마 싹을 사다 뒷북치듯 심었다. 고구마 수확은 꿈도 못 꾸니 밭에 들러보는 일도 그만 두었다.

큰 딸 가족이 다니러 와서 고구마줄기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한동안 방치했던 고구마 밭으로 큰 딸 가족과 함께 갔다. 파란 순으로 밭이랑은 보이지 않고 가끔씩 나팔꽃이 보인다. ‘웬 나팔꽃이 고구마 밭에…….’하고 덩굴을 제치며 꽃이 핀 곳으로 다가가 줄기를 들쳐보니 고구마 줄기에서 나팔꽃 모양을 닮은 꽃을 달고 있었다. 9월 초순인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홍색의 꽃자루에 몇 개씩 꽃이 피어있다. 가끔씩 내린 비를 질땅이 품고 있다 가뭄을 이겨내고 꽃까지 피웠나보다. 고구마 꽃을 따서 손녀 귓등에 꽂아 주었다. 손녀 얼굴이 나팔꽃처럼 예쁘게 보인다.

고구마는 서리가 오고 수확하면 상하기 때문에 저장하기 어렵다. 요즘 기온이 수확하기 딱 좋다. 아이들을 공휴일에 전부 부르고 기계를 잘 다루는 분에게 부탁하여 캐기로 하고 밭에 모였다. 덩굴을 걷고 비닐을 벗긴 후 기계가 밭이랑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어 작동했지만, 엊그제 내린 비로 질땅이 고구마와 함께 떡이 되어 올라온다. 작업을 중단하고 이랑 흙을 햇볕과 바람에 두어 몇 시간 말린 다음 기계가 나가며 흙을 일구고 아이들은 고랑에 앉아 흙속에서 보물을 찾듯 붉은 고구마를 찾아내었다. 실한 것도 있고 주먹만큼 작은 고구마도 있다. 얼마 되지 않은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 많은 품이 들었다. 사서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하니 농부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작업을 해놓은 고구마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송이밥에 송이버섯을 기름장에 찍어 맛나게 점식 식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수확을 핑계 삼아 가족이 단합하는 모습이 꽃처럼 환하게 보인다. 고구마에 붙은 흙을 털어내며 박스에 담아 일을 도와준 지인 것부터 챙겨두고, 아이들 몫을 나누고 보니 작은 것만 남는다. 수확할 때 일손을 보태지 못했으니 작은 고구마나마 감사할 따름이다.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고구마 먹어봤어?” “아니” “한번 먹어봐. 물에 씻으면 껍질은 자색 빛이 나고, 속살이 노란 가운데에는 하얀색 살이 꿀처럼 달고 밤처럼 구수해.”라고 한다. 수술한 어깨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질흙을 씻어낼 만큼 움직이지 못하니 함지박에 물을 담아 고구마를 담가두고 남편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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