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석 보은소방서 소방행정과 소방위

 

[기고] 어경석 보은소방서 소방행정과 소방위

매일같이 쓰고 읽으면서도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들이 꽤 많다. 청렴(淸廉)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품위가 높고, 마음과 행동이 맑고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사람을 뜻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지금에는 한정된 의미로의 청렴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럼, 우리 선조들은 청렴을 어떠한 의미로 닮고 살았을까? 청렴교육을 받다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분은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살아생전에 청렴과 검소를 생활처럼 실천하고 가르쳤으며, 자식들에게도 유산으로 남겨주겠다고 편지를 썼을 만큼 근검과 청렴, 검소를 중요시 하였다. 목민심서를 보면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 라는 내용도 있다.

퇴계 이황은 어떨까? 퇴계는 영의정까지 되신 분이시지만 영의정이 되어서도 작은 초가집에서 사실 정도로 청렴한 생활을 하시고 계셨다. 그리고 누구나 2벌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의관조차도 단 1벌만을 지니고 계셨다던 분으로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로 “한날은 임금님이 부르셨는데 아직 의관이 다 마르지 않았었다. 그래서 퇴계 선생님은 그냥 그 젖은 옷을 입고 입관했답니다. 그런데 대신들이 보기에 이황선생이 입은 게 양모로 만든 건 줄 착각하고 모함을 했었다. 왕이 화가 나서 물어보자 이건 그냥 젖은 의관이라고 하여서 왕이 크게 웃고 이황 선생님의 청렴함과 검소함이 대단하여 의관 1벌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렴의 의미는 청렴과 검소의 의미만을 한정하지는 않고 확대 재생산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친절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거절=불친절”의 이상한 프레임이 작동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여 올바른 결정을 더욱 주저하게 만든다. 단속이나 검사를 나갔을 때 터무니없을 정도의 기준 미 준수 상황에서의 청탁은 거절하기 쉬울 수 있다. 누가 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속대상이 기준을 잘 준수하여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일 때 제공되는 금품, 향응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상대방의 정성과 진심을 야박하게 거절하는 불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착각하게 된다. “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민원인의 감사표시를 무안하게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안 받으면 오히려 불친절하고 건방지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큰 불친절이 아닐까? 그 청탁인을 제외한 모든 주민에게 불친절한 처사인 것이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배려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청탁은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 청탁을 한 사람에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죄가 자라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한 훌륭한 처사인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서 배려 받기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친절은 배려해야 할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서비스 하는 것이지, 내 기분에 따라 내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달리 하는 게 아니다. 넓은 의미로 이렇게 편애하는 태도 역시 청렴의 기준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친절하다는 것은 공무를 불편부당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청렴과 친절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는 것이 아닌 청렴을 대하는 동일한 가치 기준인 것이다. 친절은 감성적인 단어이지만 실체가 감성적인 것은 아니며, 태도의 문제라 본다. 단호하지만 공손하게 거절하는 태도가 바로 청렴의 시작이고 오늘날 내가 바라보는 청렴의 의미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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