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청주대 교수

홈플러스 청주점이 24시간 영업하기로 해 지역 유통업계가 초비상이다. 충북민생경제살리기운동본부는 즉각 24시간 영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청주시재래시장협의회는 시내 13개 재래시장 상인 2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형유통업체 및 ssm 출점 규탄대회에서 '청주지역은 대형마트가 6개소로 이미 포화상태이며, 홈플러스, 롯데마트, gs마트, 킴스마트 등 대형유통업체에서 운영하는 ssm이 10개소로 재래시장과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확산 중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 한다.

대형유통업체의 확장세로 지역의 소규모 유통업체들은 이래저래 좌불안석이다.

자본과 규모 및 마케팅과 유통 등 모든 면에서 대형유통업체와 상대가 안 되는 지역의 소규모 마트와 구멍가게들이 폐업으로 내몰릴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대량 구입으로 구입단가를 대폭 낮춘 대형유통업체에 맞선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기에 지역 중소업체들의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의 대형유통업체의 연간 매출액은 약5000억 원으로 예상된단다. 문제는 이 같은 천문학적 매출을 이룬 대형유통업체의 지역에 기여도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홈플러스의 24시간 영업 결정으로 심야에 얼마나 많은 고객이 매장을 찾아,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릴지는 알 수 없다. 홈프러스 청주점처럼 24시간 운영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할 수 있어 일부 소비자들은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저인망식 싹쓸이 영업은 그나마 작은 물품 구입을 위해 찾았던 동네 슈퍼의 매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며, 지역 소규모 구멍가게들을 더더욱 생존을 걱정하게끔 몰아갈 것이다.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홈플러스 청주점은 24시간 영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홈플러스 측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역민들에게 각인된 홈플러스의 부정적 이미지보다 24시간 영업의 경제적 이득이 결코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홈플러스의 이러한 행태는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고약한 이기심의 발로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양 아흔 아홉 마리를 가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 한 마리를 빼앗는다더니 지금 청주 상황이 딱 그 꼴이다. 우리나라에 반 기업 정서가 강한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가을에 감을 수확하면서 감을 전부 따는 게 아니라 몇 개씩은 가지에 남겨 놓는 인정을 베풀었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먹이를 찾지 못해 굶주린 새들이나 작은 동물들이 남겨 놓은 감을 먹으라는 인정의 표현이요, 상생의 미덕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미덕을 지니고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며 살아왔으나 각박한 현실에서는 이 같은 미덕도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듯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지성, 경제력, 체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 민족들에게 뒤졌던 로마인들이 로마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은 상대를 포용하는 관용과 개방성,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였다고 했다. 즉 상생의 가치관이 로마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상이 각박하고 험악해질수록 이 험악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콩 반쪽도 나누어 먹는다'고 했던 우리 조상들의 상생의 가치관, 나눔의 미덕을 회복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 사회가 살 길이 아닐까? 동네 구멍가게의 생존은 지역문화의 한 요인이요, 지역민의 소통 공간이다. 작지만 꼭 필요한 우리의 이웃이요, 삶의 일부분이다.

"혼자만 잘살면 별 재미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주는 것……그게 재미난 삶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의 말이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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