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이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어릴 적 동네어르신을 만나면 드리는 인사가 “아침 드셨습니까?”였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쌀이 부족해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밥은 우리 삶에 중요한 문제였고, 쌀밥을 먹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정부가 원조를 받는 가운데 쌀 자급을 위해 총력을 다하기도 하였다. 그 때 재배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보릿고개를 넘어 쌀 자급 100%를 이루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였다.

한 때는 쌀밥을 실컷 먹고 죽어봤으면 하는 것이 한국인의 소망이었던 때도 있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쌀밥은 명절 또는 식구들 생일에나 맛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양식 이었다. 국내 생산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데다 외화도 부족해 값싼 밀가루를 주로 수입하다보니 쌀이 귀할 수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정부가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 일명 무미일로 정하고 무미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였겠는가?

​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도시락을 검사해 쌀밥을 싸온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고 경기도 안성에서는 군청 구내식당에서 백반을 팔다 청와대의 암행 감찰에 걸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군수를 문책하라는 지시를 내린 일도 있었다.

이같이 귀한 쌀의 신세가 불과 40여 년 만에 완전히 뒤바뀌어 이제는 가축 사료로 써야 할 정도로 변했다. 막대한 관리비 부담도 문제지만 이젠 쌓아놓을 공간조차 부족하니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농사기구를 이끌고 따가운 햇볕아래 진땀을 흘려가며 생산한 제품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였으니 농민들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세금을 통해 직불금을 부담하는 국민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해마다 벼 재배면적을 줄이고 쌀을 가축 사료용으로 공급하기도 하는 등 쌀의 수급균형과 적정 재고를 달성을 위해 안간 힘을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이젠 쌀에 편중된 농정 구조를 뿌리채 바꾸지 않고서는 수급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되였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1.9㎏으로 30년 전 127.7㎏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크게 줄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양곡소비량 조사결과’다. 밥을 대체할 다양한 식품 증가와 다이어트로 인한 탄수화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증가 등 국민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이유로 꼽혔다. 게다가 ‘나홀로족’이 전체 가구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여유롭게 아침을 즐길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 식사를 원하게 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 다양한 레시피로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 수입 밀가루다. 밀가루는 연간 200만t 정도 소비되는 반면 가공용 쌀 소비량은 40만t 수준에 머무른다. 그간 ‘쌀=밥’이라는 고정관념이 달라진 소비자의 변화에 제때 대응하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쌀이 남아돌아 보관 관리비로 엄청난 세금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과잉생산된 쌀 문제는 풀어야 할 국가적 해결 과제가 되였다. 때문에 기업들이 컵밥·햇반·냉동밥 등 다양하고 영양만점인 간편식을 개발, 보급하고 일부는 수출까지 하고 있다. 이제 쌀이 라면이나 국수, 파스타, 빵과 쿠키 등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가공식품의 형태로 국민 식생활을 점차 바꿔나갈 전망이다. 쌀이 가루로 유통된다면 국민 식탁에 일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밀가루처럼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소포장 쌀가루를 식품 소재로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고, 쏟아져 나오는 밀가루 가공식품들도 쌀가루로 점차 대체될 것이다. 국산 쌀 소비량 증대를 위해 쌀 가공식품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오고 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가정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가전제품은 밥솥이다. 미리 준비해 두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기밥솥은 모든 엄마의 수면 시간을 1시간 더 연장시켜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되었다. 민족의 생명선인 쌀을 지키면서 농업인 소득, 국민건강까지 1석3조 효과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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