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청일보 이한영 기자] KAIST 화학과 나노과학기술대학원 윤동기 교수 연구팀이 나선 나노 구조체를 만드는 액정 물질을 이용해 광결정(photonic crystal) 필름을 제작하고, 이를 이용해 식품이나 약물 등에 함유된 카이랄 물질을 별다른 기기 없이 눈으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잘 정렬된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만드는 일은 산업적 및 학문적으로 수요가 높은 기술로 여겨져 디스플레이 산업 및 광학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의 광 식각공정(photolithography)으로 제작이 어려웠던 나노미터 크기의 카이랄 광결정 제작에 성공해 다양한 응용기술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나나 모양의 굽은형 액정분자는 고온에서 서서히 냉각될 때 무작위로 배향된 나선형 구조체를 형성하는데, 이들을 잘 정렬할 수 있다면 카이랄 광결정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LCD용 액정 재료와는 달리 굽은형 액정분자를 정렬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아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복잡한 분자구조의 액정 재료를 활용하기 위해선 극한으로 분자들의 거동을 제어하고 균일한 배향을 유도하는 기술이 필요하지만,그동안에는 해당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에 연구팀은 LCD의 핵심 재료로 사용되는 일반형 액정분자보다 분자구조가 더 복잡한 굽은 형태의 액정분자가 형성하는 200~300나노미터의 나선 주기를 갖는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대면적에서 배향하는 데 성공한 후 이를 통해 빛을 반사하는 광결정을 제작했다. 

다음으로 분자를 제어하고 응용하기 위해, 빛에 의해 분자의 모양 및 배향이 바뀌는 현상인 광이성질체화(photoisomerization)를 유도할 수 있는 광 반응성 굽은형 액정분자를 설계했다.

이때 연구팀은 이 액정분자들이 마치 해바라기가 빛을 따라가듯이 빛에 나란히 배향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나선 나노 구조체도 빛의 방향에 따라 균일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제작했으며, 그 결과 푸른색에서 초록색의 빛을 선택적으로 반사하는 일종의 카이랄 색상 거울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거울을 이용하면 왼쪽 혹은 오른쪽의 카이랄성을 갖는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화학물질을 별다른 도구 없이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윤동기 교수는 "의약품 및 관련 화학산업에서 물질의 카이랄성은 독성 및 부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60여 년 전에 임산부 입덧 방지용으로 쓰이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은 카이랄성이 다를 경우 기형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금지된 바가 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카이랄성에 따라 부작용을 갖는 화학약품들을 제조단계에서부터 실시간으로 검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원기 박사과정이 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NPG 아시아 머티리얼즈(NPG Asia Materials)'에 지난 8월 16일자 온라인판과 '어드밴스드 옵티컬 머티리얼즈(Advanced Optical Materials)'에 지난 4일자 표지논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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