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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육정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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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8  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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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낯선 시골마을을 지나간다. 추운 날씨다 보니 농사철도 끝났고 오가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수형이 멋진 감나무가 마을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까치밥으로 몇 알 남겨 둔 붉은 감이 있어 더 정겹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옆으로 도로가 쭉 뻗어있다.

이 길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그 끝이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도로는 한없이 뻗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 욕구를 한껏 채울 요량인 듯, 시원하게 달려 나가고 있다. 덤으로 그 틈새에 끼어 나도 달려가고 있다. 엑셀을 힘껏 밟아본다. 미끈하게 쭉 빠진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속도감을 즐겼다. 직선으로 뻗어있는 길을 달려 나가는 속도감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잠시 뒤, 쭉 뻗은 길의 유혹에서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여유로이 달리다 보니 보이는 곳곳마다 이미 겨울이 와 있다. 정신없이 달렸던 길 위에서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한다. 가까이 다가왔다가 뒤로 사라져가는 산천의 초목들이 어느새, 빈 가지로 서있다. 여유 없었던 현실에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일게다. 나이 드는 만큼, 지나 간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 시간들은 이미 무형의 그림자로만 머뭇거리는데.

현실의 시간은 그저 바쁘다. 남보다 앞서 가려고 헉헉 거리다보니 무성했던 여름날의 잎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빈가지만 찬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잔가지들이 흔들리고 휘청거려도 나목들은 굳건히 제 자리에 서있다.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서있는 산천의 초목들이 나의 본향을 물어온다.

어느덧 달려가고 있던 자동차는 어릴 때 뛰어 놀던, 익숙하지만 그러나 너무도 낯선 곳에 도착했다. 가까이 들어오는 풍경이 허전한 마음으로 호젓이 들어온다. 이 곳이었던가! 아니 저기쯤일까! 나지막한 지붕과 고샅이 사라진 자리로 고층 아파트가 위엄을 드러냈다. 옛 시간들의 존재들을 가늠 할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 앞에서 현기증이 인다.

허나, 다행히 동구 밖에 서있던 낯익은 느티나무 한그루! 나를 반겨준다. 시간 속에서 나 자신도, 늙은 나무도 무릇 이방인이 되어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벽에 걸려있던 시간을 쫓고 달력의 숫자들만 기억 하느라 잊혀져 가는 것들을 몰랐다. 시간 속을 지나가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다. 원래의 모습들을 지우고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우리들이다.

아주 먼 길을 돌아 와 길 떠난 자리에 서있다. 한곳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겨울나무! 태초의 본향이듯, 세상에서 얻어 온 등짐을 풀어놓고 조용히 나무에게 등을 기대본다. 변함없이 한 곳에서 기다려 준 나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모습은 변했지만 뿌리는 시간의 깊이만큼 더욱 깊이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흔들리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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