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충청의 창]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현대사에 나타난 강력한 정치체제들은 대부분 조직화된 대중의 세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해 왔다. 어느 시대도 현대처럼 대중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활약한 시대는 없었다. 과거에는 역사가 엘리트, 영웅, 천재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대중들은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따라가는 것으로 족했다. 중세 유럽도, 근대 이전의 동양도 그러했다. 그러나 현대는 대중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대중들은 매스컴과 교육에 의해 그들의 가치와 사고와 행동을 공유한다. 그야말로 현대는 대중의 시대다.

베르댜예프의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에 의하면, 대중의 시대에서 지도자란 대중의 집단적 심리에 의해서 날조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지도자’라고 하며 대중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대중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동에 의해서 대중을 이끌지만, 일단 그 선동이 대중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때 권력을 잃고 쫓겨나게 된다. 지도자의 권위는 집단이 가진 특이한 심리나 감정, 본능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 권위야말로 대중의 비합리적 잠재의식을 기준으로 한다.

이 비합리의 권위가 국가계획으로 인간의 사유나 양심, 심지어는 개인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강제한다. 이런 비합리성으로 이루어진 권위가 인간생활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매스컴에 의해 조작되고 교육에 의해 개조된 대중의 가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가장 잘 활용되는 것이 교육이다. 대중은 그 사회의 체제가 교육해서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대중적이 아닌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 개인은 대중에 의해, 천재는 평범한 기준에 의해, 질은 양으로 말미암아 비난을 받게 된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대중은 그들과 다른 특출한 것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 개성적인 것을 모조리 파괴하지 않으면 불안해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대중의 가치란 언제나 획일적이다. 비록 그 가치가 ‘자유’라고 해도 대중적 가치로서의 ‘자유’란 ‘자유’에 반대할 ‘자유’는 용납하지 않는 획일적 ‘자유’일 뿐이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한 획일적 가치의 적용은 결국 전체주의를 만드는 첩경이 된다. 이러한 징조가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곳이 교육이다. 모든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의 교육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인헌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을 진행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가야 할 학교에서 획일화된 정치사상 교육을 자행한 교사가 있었고, 이러한 사상 주입에 대한 진상조사를 교육감이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 장관의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면서 ‘그 뉴스를 믿으면 개, 돼지다’라는 말로 편향적 정치성향을 강요하고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은 것은 부끄러운 교육현장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 평가를 획일적으로 제정하여 평가하고, 그 평가결과에 따라 인간을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획일적 인간관이 교육정책에서 나타날 때, 더구나 획일적 판단의 기준이 체제 지향적일 때에는 문자 그대로 동일형의 인간을 생산해내는 전체주의적 교육체제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