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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기차'를 회상하며이석신 충주시 봉방동 주민자치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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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9  15: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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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석신 충주시 봉방동 주민자치위 부위원장

충주 봉방소공원(철도테마공원)의 급수탑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위풍당당하다. 지난 2017년 문화재청에 근대유적 문화재로 등록신청을 해 등록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이 시설은 1928년 충북선(조치원~충주) 개통 때 만들어져 1967년 디젤기관차로 바뀔 때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 충주역이 이전하면서 지금 자리에 남게 됐다.

이 급수탑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세권 중심지인 봉방동 주민이자 기차에 대한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을 지닌 사람으로서 근대산업시설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급수탑이 잘 보존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고 보면 충주는 오래 전부터 기차와 친밀한 도시였다. 내 기억 속의 기차는 초등학교 때가 처음이다. 지금은 대소원이라 불리는 이류면 매현에 살던 시골 아이의 머리에 새겨진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부모님이 장을 보러 가시면 또래들과 5리가 넘는 가주고개로 마중을 가곤했는데, 그 고개 마루에서 난생처음 괴물같은 기차를 봤다. 한 량, 두 량 세다보니 서른 량이 넘어갈 정도로 길고 웅장했다.

기차를 타본 것은 중1 때 삼탄으로 소풍을 갔던 것이 처음이다. 지금은 문화동으로 바뀌었지만 그 때는 역전동(驛前洞)이었다. ‘역전(驛前) 앞’이라고 지금도 잘못 쓰고 있는 말이 그때부터였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충주역사는 뒷길이 곧바로 기찻길이었다. 충주역과 기찻길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가면서 달천사거리와 삼원초 옆에 있던 건널목, 제복을 입은 간수,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고 곧이어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음이 아쉽기도 하다.

삼원초 옆 건널목은 없어지고 달천사거리 건널목은 없애는 대신 과선교가 생긴 오늘, 그때의 풍경이 가끔 그립다. 요즘은 들을 수 없는 교회 종소리와 함께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도 그렇다. 삼원초 출신 동년배들의 얘기로는 기차가 지날 때 너무 시끄러워 아예 수업을 중단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호기심에 칼을 만들려고 레일 연결 부위에 올려놓은 대못 위를 기차가 지나간 뒤, 납작해진 못을 줍다가 뜨거워서 떨궜던 추억도 아련하다.

충북선은 1921년을 시작으로 조치원~제천 간을 1958년 개통하고, 1980년 복선화와 2004년 전철화 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인 중부내륙철도사업은 충주의 미래에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부내륙철도 완공을 앞두고 봉방동 일대와 연결한 충주역세권 개발은 충주발전을 견인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기대하며 기다린다. 다시 충주에 기차의 그 힘찬 소리, 웅장한 모습을 보여줄 날이 어서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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