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현재라는 시간은 마치 초침 위에 올라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과 같다. 초침이 지나온 부분은 과거가 되고 아직 초침이 지나가지 않은 곳은 미래이다. 우리의 삶은 그저 현재와 미래를 나누는 그 칼날 같은 초침 위에서 위태롭게 흘러간다.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가장 기본적인 원소라고 수학적으로 정의한다. 현재라는 말의 의미도 마치 이점과 같다. 현재라 의식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고 만다. 과거는 기억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미래는 상상이라는 형태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그저 지나치는 과정일 뿐 오히려 실체가 없다. 한해의 끝에서 여기저기서 송년회 소식이 들리는 이즈음이면 현재라는 유령 같은 시간의 끝에 올라타 떠밀려 온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며칠 전 20년 계약의 보험이 만기가 되었다는 우편물이 왔다. 앞에 놓였을 때는 막막하고 길게 느껴지는 게 시간인데 지나고 보면 순식간이다. 20년은 무려 7,305일로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과거가 되고 보면 그저 기억 몇 개만 흔적으로 남기고 바스러져 버리고 만다. 하루가 지루하다며 사람들은 시간 보낼 거리를 찾는다. 우리가 즐기는 취미나 오락이라는 게 대부분은 그렇게 무위하게 시간을 소모하는 행위이다. 시간을 죽이겠다고 취미활동도 하고 소일거리도 찾으며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언제 이렇게 지났냐고 한탄할 만큼 빠르다. 시간은 잘 안 가는데 세월은 빠르다는 감각적 모순이 시간 속에 있다.

몇십 년 전도 마치 얼마 전 같이 생생한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있다. 무언가가 되겠다고 청춘의 무모한 열정과 용기로 들떠있던 친구들은 이제 비슷한 모습이 되어 한 발 뺀 채 세월의 뒷전에 물러나 있다. 순정만화를 보던 소녀들도 그 고향을 뛰쳐나가 도시의 어느 구석으로 사라졌다가, 손주를 거느린 할머니로 나타날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런데 늙지도 죽지도 않는 순정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마음은 그대로이다. 그저 색 바랜 만화 속의 인물처럼 생각도 느낌도 바래서 푸석푸석해졌을 뿐이다.

해 넘기기 전에 친구들과의 몇몇 송년회가 남아있다. 이런저런 높낮이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비슷하게 내리막길에 서 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은 시절 생각만큼 그다지 늙은 나이도 아니지만, 기대했던 만큼 여유롭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다.’ 혹은 ‘시간은 유수 같다.’라는 흔하디흔한 뻔한 말속에 뼈아픈 세상사의 진실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연말이면 1년간 내 삶의 답이라고 제출했던 답안지가 채점되고 점수를 확인하게 된다. 정답이라 확신하고 오답을 자신 있게 써냈던 적도 있고 정답이 무언지 전혀 모르지만, 요행을 바라고 찍기로 답을 써냈던 일들도 있다. 채점 결과 내 삶의 2019년은 어떤 점수로 결론 날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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