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다사다난’이란 상투적인 말로 슬그머니 지난해를 묻어버리고, 21세기의 세 번째 십 년이 시작되는 새해를 맞았다. 새해맞이 명소인 동해안 곳곳에 소망과 희망을 기원하는 인파와 차량이 몰려 주변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는 소식이다. 해가 새로 시작되는 이즈음이면 특별히 활발한 장소가 있다. 새로운 결심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체육관이나 서점 등을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올해 운세에 대해 귀띔을 해달라고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기도 한다. 또한 특별한 대상에게 새해의 소원을 기원하는 장소 또한 부쩍 붐빈다.

자신에게 닥쳐올 앞날이 어떨지 알아보고 싶고, 가능하다면 좋은 쪽으로 그 앞날을 바꾸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미래는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결정론자나, 미래는 불확실하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결정론자나 마찬가지다.

뉴턴의 역학 체계가 완성된 후 현실 세상의 움직임뿐 아니라 신비롭던 천체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예측하게 되자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시대를 풍미했다. 그 시기의 프랑스 물리학자 라플라스는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현재의 모든 물리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초월적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하며, 운명을 수치화하여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미래의 일은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입장으로 고전역학의 결정론에는 많은 의문이 생겼다.

동양적 전통에서도 하늘의 명을 바꿀 수 없다는 숙명(宿命)이라는 단어와 명은 움직인다는 뜻의 운명(運命)이라는 단어가 공존한 것을 보면 타고난 팔자라 어쩔 수 없다는 결정론적 세계관과 기원과 주술로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는 비결정론적 세계관이 공존했던 것 같다. 미래예측과 준비를 위한 동양적 방법은 세 가지다. 점으로 길흉화복을 예측했던 주역이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존재인 영혼을 가정하는 무속에 의한 방법이 하나 있고 관찰로 미래를 예측하는 관상이나 풍수지리학이 있다. 그리고 연초에 흔히 찾아가는 철학관이란 곳의 사주명리학이 있다. 이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한 위치를 음양오행으로 해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학적 방법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나쁜 공부 방법 중 하나가 문제를 보고 스스로 풀어볼 생각보다 답지와 해설을 먼저 보는 것이다. 더구나 정답일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해답지를 미리 들춰본다면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꼬일 것 같다. 의심쩍은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와 다를 바 없다. 노자 도덕경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기도하던 애원을 하든 인간의 일에 관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하늘이 불현듯 찾아와 해결해 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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