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파릇한 것이 한 가득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안동네 노파가 캐낸 냉이다. 누런 잎을 떼어 내고 주섬주섬 성한 것을 골라 포대에 담는다. 손에 잡힌 찢겨진 종이가 허옇게 물기를 머금었다. 살짝 잡아당기기만 해도 뜯어진다. ‘김 언년’ 이라고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다. 냉이를 캐낸 노파의 이름이다.

삼십여 년 전쯤 직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통통하며 조용한 성격의 선배가 있었다. 일처리도 능수능란했다. 상사의 지시가 떨어지면 일사천리로 해내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물론 나는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그의 움직임을 따랐다. 상사는 사소한 일조차 그에게 의존했다. 자주 예쁜 이름대신 ‘언년이’라 불렀다. 목소리에 꿀을 바른 듯 달콤했다. 그래선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상사가 부르면 잔을 내려놓고 달려갔다.

회식이 있다는 공지가 떴다. 오랜만에 모인 직원들을 향해 상사는 회사가 앞으로 나아 갈 방향을, 그리고 우리들이 해 내야 할 업무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했다. 매 순간 건배를 하고 직원들은 그의 선창에 따라 제창을 했다. 회사 이야기만 하던 상사가 어눌한 말투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선배가 찬 물을 건네자 “내 소싯적 몸종 이름이 언년이었어. 너랑 닮았지.” 하고 말했다. 순간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오직 삼겹살만 뜨거운 불판 위에서 까맣게 타들어 갔다.

다음 날 업장 분위기는 시베리아 벌판 같았다. 선배는 핼쑥한 얼굴로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이후였다. 자신의 노력으로 쌓아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 듯 허허로움 앞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간신히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사는 아무 기억이 없는 듯 언년이만 찾으며 사직서를 철회하라고 했다. 단호하게 건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고수했다. 동료들은 선배에게 함께 일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 했지만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언년이는 손아래 계집아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이다. 어린 소녀를 가리키기도 하고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라 딸이 태어나 기대에 어긋났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사극에서 양반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밖에 누구 없느냐’ 하는데 그것이 남자 일 때는 ‘언놈’이고 여자일 때 ‘언년’이란다. 상사가 자신의 몸종을 운운하며 언년이를 언급했으니 어떠한 변명으로도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처지가 곤궁하다하여 함부로 대하는 시대착오적 행동은 본인 스스로를 외로운 섬에 가두는 일이다.

사람의 이름은 태어났을 때 한번지어 평생을 함께 간다. 물론 생활하는데 불편하거나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팔순이 넘도록 언년이란 이름으로 사는 것을 보면 남다른 애정이 있어 도저히 자신에게서 떼어 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보기만 해도 귀여운 딸이기에 언년이라 지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어찌되었건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한겨울 추위를 물리치며 냉이를 캐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존경스럽다. 냉이 향, 참 진하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