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여행을 하던 때 인간은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사막이나 들판을 헤맬 때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살피고 별자리를 미루어서 방향을 확인하고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때의 별은 우리에게 희망이자 꿈이자 인생의 반려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어둠을 배경으로, 그 배경이 더 어두울수록 별은 더 큰 빛을 뿌린다. 바로 이 부분이 생의 역설적 의미를 간직하는 대목이다. 내가 별을 좋아하고 그 상징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흐름에서 나는 별빛처럼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일들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란다.

한 때 나는 '별'을 노래하기로 작정하고 여러 편의 '별' 연작시를 썼던 적이 있다. 그 계기는 내가 쓴 '별'이라는 시에 호감을 갖게 된 어느 비평가 한 분이 "김완하 시인은 '별' 공장을 한번 차려 봐!" 하면서 연작시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 준 것이 기회가 되었다. 별만을 가지고 일생동안 노래한다고 해도 그것을 어찌 다 형상화할 수 있겠는가. 어떻든 나는 한동안 별 연작시를 쓰다가 어느 사이에 다른 쪽으로 관심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별 만큼 많은 시인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이미지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또한 시적 완성도를 이루어 내기 쉽지 않기도 하다.

나는 별을 통해서 우리 생의 역설적 가치를 노래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별처럼 '반드시 있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생의 진실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영원히 다가설 수가 없는 수평선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쓴 별 가운데 이러한 생의 속성을 담고자 한 시가 있다. "나의 별은 내가 볼 수 없구나항시 나의 뒤편에서나의 길을 비춰주는 그대여, 고개 돌려 그를 보려 하여도 끝내 이를 수 없는 깊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 않은가. 나의 별은 항시 나의 뒤편에서만 나를 비추어주기 때문에 내가 눈을 돌려 그것을 보려하면, 그 별은 이미 나의 등 뒤로 돌아가 내가 영원히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은 별의 영원성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기에 "우리가 삼천 번 더 눈떠 보아도 잠시,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 이 세상 가장 먼 거리를 질러가는 빛이여"라고 표현했다.

이 시의 표현 가운데서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신의 별을 찾기에 평생을 바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느새 아침은 닿고, 진실로 나의 별은 나의 눈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가 닿아야 하는 진실은 멀고 그 반면에 우리들의 생은 짧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생은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고 있는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여, 그 절망을 넘어서야만 우리 생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그 고통의 깊디깊은 밤을 두 눈으로 뚫어지게 응시해야만 어둠은 가고 새벽이 오는 것이다. 반드시 별은 저기 하늘에 있지만 우리는 우리 마음속으로 눈을 뜰 때에야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 생의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이고 진리이고 생의 역설적 의미인 것이다.

▲ 김완하 한남대 문창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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