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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소음의 경계한옥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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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3  17: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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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여러 날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난데없이 국지성 폭우가 내렸다. 겨울답지 않은 기온과 눈조차 오지 않다가 갑자기 세찬 비가 퍼부어대니 심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그 밤 어두운 비속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매우 힘들었다. 우렁찬 빗소리가 시원하기는커녕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했는데 같은 길은 십수 년째 다니면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몇 차례 숨을 고르고 나서야 마음이 온전해졌다. 잠깐 사이에 얼마나 긴장했던지 어깨와 목덜미가 무지근했다. 차에서 바로 내리지도 못하고 불편한 부위를 주무르고 문지르기를 반복하다가 아예 시트를 뒤로 제치고 누웠더니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운전이 이렇게 긴장되고 무서웠던 날이 있었던가. 없었다. 목적지가 주어지면 밤낮 구분 없이 당차게 다녔고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는 밤마다 눈이 내려 새벽 출근길 나서기가 수월하지 않아 남들은 버스를 타고 다녔어도 기어코 차를 가지고 도로 위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었다.

계절도 저마다의 역할이 있게 마련이다. 따뜻한 겨울나기가 서민의 바람이라지만 가을 날씨 같은 겨울을 원하지는 않는다. 사회도 제본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다. 날씨는 추워도 마음은 따듯한 계절, 서민이 행복해지는 나라, 이런 겨울과 나라라면 아무리 폭우가 쏟아진들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TV를 아예 켜지 않고 스마트폰만으로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를 보기 시작한 후 제목과 신문의 얼굴이라는 리드와 댓글로 기사를 판단하는 습관이 생겼다. 글씨가 작아 일일이 본문 글씨를 다 보기 힘든 이유도 있고 그 무엇보다 출처가 불분명한 기사,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전달력이 떨어지는 문장들을 일일이 읽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가 이젠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주로 악담이 주류를 이루는 댓글을 보기란 소음을 듣는 것만큼 끔찍했다. 정치 기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다못해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를 위한 기사까지도 참기 힘든 흉측한 댓글이 난무했다.

아이들이 주된 소비자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를 두고 성인들은 노키즈존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전체관람가인 영화라면 어린이도 당당하게 관람을 즐길 권리가 있는데 노키즈존이라니. 차라리 성인전용관을 요구할 일이다.

민식이법은 또 어떤가. 어린이의 교통안전을 위한 법은 아무리 강화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린이는 도로와 차량으로부터 안전해야 할 권리가 있으며 성인은 이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법이 강화되어 불편하다고 해서 원망할 일이 아니며 내 자식이나 내 가족을 돌보듯 주의를 거듭하여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학교 주변 시설의 본래 주인은 분명히 아이들인데 왜 성인들은 자신이 주인인 척하는가.

댓글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땅치 않더라도 기사 본문을 다 읽고 기사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고 소신껏 결론을 내기로 했다.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소음이 많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남을 밟으려는 소음과 누군가를 밟고 기어이 넘어서려는 이기심이 그것이다. 심지어 호의를 조롱이라고 우기는 이가 내는 소음은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얼마나 더 많은 소음을 견디고 나서야 이 세상이 환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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