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시인

[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시인

어느덧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되었다.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고, 시간의 흐름은 무심하고 가차없다. 눈을 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인가 하면 금방 주말이고, 새해 인사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중순이다. 돌이켜보면 2020년으로 해는 바뀌었지만 지난해와 별 차이 없고 내년 또한 그럴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12월과 1월 또한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날짜와 월(月)과 해〔年〕를 구분하고 나누어 놓은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벼릴 것은 벼리며 새롭게 가다듬고 쇄신하자는 의미가 클 것이다.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 지난달보다는 더 보람 있는 이 달, 지난해보다는 새해가 더 좋은 해가 되기를 소망하는 인간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무작정 시간을 보낸다고 나아질 리는 없다. 모난 돌은 오랜 세월 부딪히며 둥근돌이 되지만, 모난 욕심이 세월이 흐른다고 쉽사리 둥근 자비로 다듬어지지 않으니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몇 달 전, EBS 다큐프라임, '송광 1부, 시절인연'을 감명 깊게 보았다. 송광사 부근의 숲에서 일어나는 자연계의 섭리를 다룬 자연다큐멘터리를 보고 시절인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게 되어 기뻤다.

자연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고, 숲의 생명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연결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노력한다. 작은 씨앗 하나도 수많은 인연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자연은 이러한 인연을 맺게 하고 성장시키는 거대한 보육원인 셈이다. 그래서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곡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농부는 알고 있는 것이고, 자연은 수많은 우연에 의해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것이야 말로 인연에 따라 일체만상의 길이 달라진다는 연기론(緣起論)이고 시절인연(時節因緣)이다.

시절인연이란 필요충분조건 즉, 딱 맞아 떨어지는 걸 뜻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조건이 다 갖추어진 후에야 때가 온다.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처럼 병아리가 알 속에서 주둥이로 껍질을 깨고 나오려 할 때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주듯, 흙 속에 풀뿌리가 있지만 보다 필요한 조건은 흙 밖의 환경, 즉 인연이 갖추어져야 새순이 돋고 열매가 맺어지는데 이걸 시절인연이라 한다.

시절인연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혹은 꼭 피하려고 해도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전에 만날 요인을 품고 있다가 시간적 공간적 연(緣)이 닿으면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일을 게을리 하고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시절인연은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니, 새해에는 이 교훈을 되새기며 각자 최선을 다하여, 경제도 되살리고, 저출산과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고 상생하자.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돌이켜보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벼릴 것은 단단히 가다듬고 단련하며 새 출발하는 경자년 새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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