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지난해 정부로부터 무료 독감백신 혜택까지 보았는데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코감기나 편도선염 정도라면 모를까 여간해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편이라 백신의 효능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이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가지 않고 일단 상비약 통을 뒤적여 버틴다. 근무 때문에 진료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기도 하고 웬만하면 약을 적게 먹으려고 해서이다. 특히 감기는 약을 쓰면 일주일, 안 쓰면 7일이라는 의사들도 동의하는 우스갯소리를 신봉하는 탓도 있다. 

몸에 이상을 느낀 날은 설 명절에 성묘를 다녀온 후이다. 자고 일어나니 목이 따끔거리고 잔기침이 났다. 머리가 무거워 열을 재보니 미열도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다녀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음식 거리를 장만하러 다닌 시장과 마트도 인파로 북적거렸으니 당연히 사람을 의심했다. 그럭저럭 버티다가 이틀 만에 동네 병원을 갔다. 대기실에 환자가 꽉 찼는데 직원 말로는 두어 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중국에서 발원한 신종 코로나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로 퍼졌다고 호떡집에 불이 난 듯 난리를 치고 있을 때지만, 사실은 신종 플루로 불리던 A형 독감도 매해 겨울마다 창궐하고 있다. 
 
진료실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서 있을 곳도, 앉아 있을 곳도 마땅치 않아 밖에 나가 있었다. 만약 신종 코로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다른 환자를 위해 피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였다. 중국을 비롯해 전국을 달구는 우한 독감 뉴스는 사소한 감기도 오해를 부르게 만드니 언론이라는 바이러스는 신종 코로나보다 더욱 강력한 전파력이 있었다.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상식적인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추운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뿐 아니라 여름에도 감기에 걸리니 우리는 일 년 내내 감기와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상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번처럼 사소한 감기를 앓으며 몸이 아파서 힘들기보다 마음이 아픈 적은 없다. 아픈 표시를 낼 수가 없으며 기침이 나면 성급하게 화장실이나 밖으로 나가 몰래 해결해야 했다. 부득불 사람을 만나도 아픈 표시를 낼 수가 없고 식사 후 약을 바로 먹어야 하는데도 참았다가 집에 돌아와 먹었다. 

이쯤 되니 몸의 감기보다 마음에 감기가 드는 것 같았다.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외출하기도 꺼렸다. 돌발적으로 기침이 나니 남들한테 경계 당할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10 여일 동안 거의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낮잠을 자거나 충분히 물을 마시면서 쉰 덕분에 감기는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감기는 개운하게 낫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도 이십 몇 번째 추가 확진자 소식이 들렸다.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니어서 우선 안심이다. 나 감기 걸렸어요, 라고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지 못했던 지난 2주는 마음의 감기가 더 심했다.  쉬는 동안 언론과 1인 방송 매체를 자주 접했었다. 일명 우한 독감인 신종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이곳에 득시글거렸다. 특히 유럽인의 아시아인 혐오 소식이나 한국인의 중국인 혐오 소식은 마음 감기의 대표적 바이러스 같다.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 간다. 지역과 이념 갈등을 비롯해 계층, 세대, 성별 갈등이 그것이다. 모처럼 모인 친척 간, 가족 간에도 정치 이야기나 취직, 결혼, 출산 이야기는 금기어가 되고 까딱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꼰대로 매도될까 봐 말을 아낀다. 

인정에 목말라 잔정에 목을 매는데 그마저도 포기해야 할까 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고어가 될 테고 옆집에 수저가 몇 벌 있는지 안다는 말은 외계어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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