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조선조에서 불교를 가장 가까이 했던 임금은 세조일 것이다. 세조는 어려서부터 절에 자주 다녔고 신심(信心)도 두터웠던 모양이었다. 세조는 부처의 일대기를 손수 짓기도 하여 '석보상절'을 남긴 임금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조가 임금이 된 바탕을 돌이켜보면 부처의 말씀을 처음부터 어기고 말았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세조는 엄청나게 어긴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임금이 되어 나라를 튼튼히 다스리는 기틀을 쌓았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는 못할 짓을 범한 임금일 뿐이다. 왜냐하면 조카인 단종의 목을 조르고 왕좌에 앉은 삼촌인 까닭이다. 날파리 하나라도 목숨이니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의 계율은 그만두고라도 인륜을 어긴 세조의 짓은 누가 무어라 해도 할 말을 잊게 한다.

세조가 등창이 나서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면서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이는 조카의 목숨을 앗은 죄업을 풀어 보려고 한 인간으로서 고뇌했던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조카를 죽인 죄업은 아무리 신심이 깊다 한들, 그리고 아무리 대찰의 부처에게 빌지라도 씻어질 리가 없다. 그러니 살생의 계율로 본다면 축생으로 태어나는 벌을 받았을 것이다.
 
임금이 왕도를 버리면 소인배나 다를 바 없다. 임금이 군자가 되려면 왕도를 펼쳐야 한다. 왕도는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길이다. 세조는 처음부터 그러한 길을 걸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군자의 도를 송두리째 어겼기 때문이다.
 
군자라면 어린 왕을 끝까지 보필하는 충(忠)과 신(信)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세조는 그러한 충과 신을 저버렸던 임금이다. '석보상절'을 백 번을 써서 책으로 묶어 본들 조카를 죽인 살생을 벗어날 수가 없고 인륜을 어긴 죄로는 군자의 길을 처음부터 밟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는 것은 지(知)와 예(禮)와 덕(德)이 있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한들 예와 덕을 등진다면 바르다, 옳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메스를 의사가 사용하면 생명을 구하는데 쓰이지만 바르지 못한 욕심이 잉태한 사람이 쓴다면 사람을 해(害)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욕심으로 왕자를 차지한 세조 임금은 지(知)는 있었으나 예(禮)와 덕(德)이 없는 소인배일 뿐이다. 군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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