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내일을 열며] 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오래전 어느 철학개론(哲學槪論)에,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후배가 그의 선배 되는 대학생으로부터, 철학을 권유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요지(要旨)는 이런 것이었다. 선배 왈, "3+5가 몇인지 아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후배는 농담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닌데 무슨 함정이 있나? "……"머뭇거리고 있는데  선배는 "몇이냐?"고 다그쳐 묻는다. 이에 후배가 "8이지요, 뭐"라고 하니, 곧 이어서  "왜?"라고 묻는다. "왜라뇨?" 그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명제(命題)야말로 누구나 다 아는 것인데, 새삼 물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여기서 '8'이라는 답은, 그 누구도 의심치 않는 당연하고 자명한 이치이기에 말이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설사 어떤 물음이나 의문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철학자나 또는 종교인들의 몫이지 우리가 힘들여 논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 이런 당연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간단한 '더하기나 빼기' 말고도,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진다'든지,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등 헤아리면 없는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현상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가짐으로써,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 하였다.   

이처럼 당연한 일에 대해서 '왜'라고 묻는 것을, 철학에서는 '비판적 태도'라고 부른다. 무릇 삶의 여정(旅程)에서 아무 비판도 없이 산다면, 거기에는 특별히 '나의 생(生)'이라고 할 아무것도 없다. 그런 태도를 취해야, 비로소 나는 '나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철학'하면 사람들은 '어려운 것',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 여기고 이를 멀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철학'은 철학자만이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누구든지 철학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철학(哲學)은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러기에 철학은 사변적(思辨的)·추상적(抽象的)인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철학도 이론을 바탕으로, 실천적 성격의 학문이어야 한다. 이는 철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을 통해, 주어진 삶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독특한 이성(理性)을 지니고 있기에, 철학적 사유로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런 철학적 사유(思惟)는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 흔들릴 때,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힘이 있다. 모쪼록 보다 진지한 마음과 자세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다움을 찾아 조금씩 답을 해나가야 한다. 그 길이 자신을 보다 거듭나게 만드는 길이며, 성숙하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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