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학교 교수

 

[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학교 교수 

차디 찬 길바닥에 한 사내가 홀로 죽었다.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자신이 감염자로 판명 나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파악한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감염될 것이 두려워 마지막 편지를 써놓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싸늘한 시체로 며칠 후에 발견된 것이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죽으면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낸 것일까?

한 가장을 죽음으로 내몰고, 나이 들고 병든 노인을 죽도록 내버려두고,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죽도록 방치된 환자가 있는 것이 현재 지구상의 현실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현상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분노하는 가슴에서 울부짖는 인간의 애절한 절규에 답을 해야 하는 존재는 없다. 책임을 져야하는 주체는 우리들 그 자체가 아닐까? 스스로를 자책해 보지만, 속절없이 인간이면 겪어야 하는 재앙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오늘도 길거리에는 여지없이 마스크를 사려는 행렬은 줄을 잇고 있다. 그들은 영악하지 못하여, 미리 챙기지도 못하고 뒷구멍으로 마스크 하나 얻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나마 기다리다 마스크 두 개의 행운을 얻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망한 발걸음으로 온 길을 되돌아간다.

긴 줄에서 벗어나 터벅이며 걸어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외친다. 위정자여, 그거 아시는가? 오늘 바이러스로 죽어간 한 사람이 바로 당신을 위해 한 표를 목숨으로 던졌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당신들이 노약자라고 팽개쳐 죽어간 목숨들이 그들의 청춘에 당신들이 사용하는 세금을 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다는 것을 아시는가? 경쟁사회라서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거 아시는가? 우리 인간은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선거에도 그렇게 위정자들이 필요로 하는 한 표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삶의 눈물로 얼룩진 선택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문제를 남겨놓는 위정자들은 분명 사회적 살인자이다!

이러한 허탈한 부분은 충분히 위기에 대한 대비 시스템을 구성하였더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재난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치더라도, 재난에 대응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재난관리시스템의 책임자는 어떠한 형태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변명하는 자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부자격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이번 4.15선거는 유별나다. 이번 선거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거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일례로 본다면,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지상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새로운 주자가 불리한 선거게임을 하게 되었다. 분명히 코로나바이러스는 선거출마자 누구에게는 호재이고 또 누구인가에게는 악재임에 틀림이 없다.

사회적 살인자는 자신의 이익과 영욕을 위해서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하여 국민을 속이는 기술에 능숙하다. 자기의 뜻을 지배와 속임수를 통하여 그럴듯하게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그리고 대개는 리더십의 가면을 쓰고 본인만의 이익을 창출한다. 이러한 사회적 살인자는 전체적인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은밀한 공작과 공격을 통하여 추구한다. 결국 전체의 구성원이 이러한 사회적 살인자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알면서도 그들과 공조하는 우리들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우리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출마하는 의원출마자들에게 우리 사회를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노획하는 활극장로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오류를 또 다시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깨어있어야만 그러한 기회를 절대 허용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깨어있는 만큼 지구촌의 지도자들은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사회적 살인자를 허용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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