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며칠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자 정보 알림 문자가 뜸했다. 딩동! 날라 온 문자에 현재 추가 확진 자 없음이라고 왔다.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나도 모르게 손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읊조린다. 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꽃소식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혀버렸으면 좋겠다. 사업장은 개점휴업이다. 혼자서 차를 마시고 혼자서 음악을 듣는 원치 않은 호사를 누리고 지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모두가 함께 겪는 재앙 앞에서 낮을 대로 낮아져서 겸손해지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인간의 나약함에 순종하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려는 노력들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다.

갑자기 나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살면서 이렇게 여유로워 본적이 없어서 헛헛해졌다. 이참에 내가 나 자신에게 기꺼이 휴가를 주기로 했다. 숨 가쁘게 달려왔으니 쉬었다가가자. 숨을 고르며 쉼표를 찍는다. 그동안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아름다운 풍경들은 보지도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쳐왔는지도 모른다. 트랙을 도는 경주마같이 속도를 내는 일에만 전념했다. 때로는 들숨과 날숨 사이의 균형이 맞지가 않아서 수시로 넘어지기도 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서 상처를 봉합하다보면 어제나 다시 제자리 원점이었다. 쉼표가 필요했다.

햇살이 푹 퍼진 오후에 산성 길에 오른다. 역동적이지 못하고 정적인 성향의 나에게는 트래킹 코스에 불과한 산성 길도 그리 수월하지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다가 주말이면 그냥 휴식을 취하고만 싶던 일상이었다. 운동을 즐겨하지 않던 내 몸은 여기저기에서 퇴행의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용단을 내리고 나에게 스스로 시동을 걸었다. 누군가와 동행도 만들지 않았다. 서로 시간을 맞춰서 약속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피하고 싶었다. 오롯이 혼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에 푹 빠져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바로 지척에 산성을 끼고 살았으면서도 참으로 오랜만에 산성 길을 걷는다. 스틱에 의지해서 뚜벅뚜벅 걸었다. 내려다보이는 도심의 풍경은 또 다른 세상처럼 생경하다. 저마다의 지붕아래서 성냥갑 같은 빌딩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복닥거리며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운동부족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 나를 사람들은 앞서서 가고 있었다. 외출을 자제했던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눈만 내놓은 채 걷고 있었다. 묵언수행 길을 가듯이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면서 걷고 있는 그 모습이 마치 순례자들 같아보였다.

혼자서 걷다보니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 보이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느껴졌다. 심지어는 내 마음도 보이고 내 마음의 소리들마저도 들렸다. 혼자 오르기를 참 잘했다. 그동안 내 삶은 속도와 깊이의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속도는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당도하게 될 것이다. 단지 간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면서도 산성을 한 바퀴 완주했다. 좀 늦게 도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난 뿌듯했고 많이 행복했다. 이렇게 내 삶의 깊이를 조금씩 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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