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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삶에도 봄날은 온다박기태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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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9  17: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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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갈대숲 가장자리 조그만 물웅덩이에 하얀 눈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땅 아래 숨죽여 흐르는 물위로 수면은 얼어붙어 살얼음을 이루고 그 위로 또 한 겹 솜털 같은 눈이 덮이면 눈은 다시 눈 위로 쌓이려 허공을 나비처럼 날고 있었다.

가끔씩 흩날리는 춘설에 메마른 우리의 가슴은 다가올 봄의 향연에 부푼 꿈을 꾸지만 현실에 만연해 있는 상황은 오롯이 흉흉한 감정만을 실어 잔인한 3월의 시간들을 무심히 흘려보내고 있다.

가엾고도 애잔한 이 세상의 피조물들이여 그 동안 안녕하신지 안부를 전하고 싶다. 온 세상에 흩어져 제 각각의 색조와 향기로 모습을 드러내는 우리는 부르기 쉽고 말하기 좋게 아름답고도 황홀한 존재들인가도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떠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우리는 왜 삶의 끝자락에 필연적으로 “죽음”이란 주홍글씨를 새길 수밖에 없는가? 만약에 신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필멸의 죽음을 점지해 주었다면, 우리의 영혼만을 따로 골라잡지나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그것이 숙명이라면 신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놓아 주질 않으며, 그 위에 각인을 새겨 꼬리표를 붙여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단지 인간적으로만 치우치거나 지나칠 정도로 신적이 아닌 우리들의 삶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이 세상의 어떤 보석과도 견줄 바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의 의미 있고 소중한 삶을 위해서 인생이라는 값진 드라마를 연출하려고 전전긍긍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끝은 영원히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한 편의 드라마를 위한 인생을 살지라도... ....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어릴 적 내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떠 올린다. 이제는 그 모습을 나의 것으로 만든 지도 오래되었지만, 손바닥만 하게 뚫린 다락방의 창에서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단히 간절했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납작하게 엎드려 간절하게 기도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수록 나는 세상에서 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되살아난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엔 다락방도 없고 내 곁에 아무도 없는 시간, 그 때의 다락방에서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절대자에게 고하고 싶은 간절하고도 절절한 말들을 전하듯이... ....

문득 ‘오상의 비오 신부님(Padre Pio)이야기’에 실린 “인생은 고통의 바다다.”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고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략)

모든 고통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고통은 인간의 신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글귀가 내포하는 의미는 삶이 고통으로 점철되어 고뇌에 찬 삶일수록 그 대가로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여 주기도 하고 때론 붙여주지 않는 것처럼, 삶에 대한 결과에 감탄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그냥 마침표나 물음표가 매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고, 참다운 인간애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결과가 올지라도 우리에게는 다시 찾아올 따뜻한 봄날의 여정이 있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눈물겹도록 간절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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