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시인

 

[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시인

따사로운 봄볕이 귀엣말하며 손짓하여 집을 나선다. 성안길과 육거리시장에 볼일이 있는데도 발걸음은 명암저수지 방면으로 향한다. 요즘 코로나19로 내 몸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가 보다. 토요일인데도 약국 앞의 긴 줄을 뚫고, 농협 현금자동인출기(ATM) 문을 미니 닫히기 전에 어느 분이 잽싸게 들어온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웃픈 장면이다.

용담광장이지만 금천광장으로 불리는 광장 벤치에 예쁘장한 아가씨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니 행인들이 혀를 차며 지나간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옆에 와서 연기 피하듯 달아난다. 나도 어느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의 사회학적인 의미는 사회 안의 집단 구성원이나 집단 간에 존재하는 규범적·정서적·문화적 거리를 의미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는 집단 구성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로 그 의미가 한정된다. 기업에서는 되도록 재택근무제를 도입하여 사무실에서의 직접 접촉 기회를 줄이고, 학교는 휴교하여 감염을 예방하며, 종교 활동도 중단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각종 행사나 모임을 연기하거나 취소하여 접촉의 기회를 줄이고 있다.

감염병 확산 억제를 위해 사람간의 접촉을 줄여서 감염의 기회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근본적인 예방법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불신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에서도 권장(2020년 3월 6일)하는 현실이 슬프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더라도 마음만은 가깝게 소통하기를 바란다.

명암천변을 걷자니 산수유, 매화, 개나리 등 갖가지 봄꽃이 피어나며 손을 흔든다. 학교에 근무할 때에도 주장했지만 무궁화, 개나리는 전지(剪枝)를 하지 않고 키워야 자연스럽고 그 품위를 더한다. 특히, 자랑스럽고 소중한 나라꽃 무궁화는 더욱 그렇다.

명암저수지는 언제 보아도 싱그럽고 희망을 노래한다. 코로나19로 적막할 것이라는 나의 짐작이 빗나간 것이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저수지를 품은 산책로는 주말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이 붐비지만, 여기서도 다툰 사람들처럼 뚝 떨어져 걷는다. 저수지에는 여느 때와 달리 오리배 10여 마리(?)가 달려 잠시라도 코로나19를 잊은 것 같다. 그 사이로 해코지하지 않는 것을 아는 한 쌍의 오리가 유유자적하며, 아무리 혼탁해도 마음의 여유를 찾으라고 일깨워준다. 여기서라도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싶지만 다른 분들이 싫어할 것 같아 참고 걷는다. 제방 아래쪽의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해바라기하던 수양버들 잎이 시나브로 자라 저수지 물로 세수한다.

내 가슴과 눈에 저수지 주변의 속삭임을 가득 간직하고 내려온다. 산에 오를 때 미처 못 본 모습을 내려올 때 볼 수 있듯이, 돌아오는 길에 많은 것을 보고 깨닫는다. 우암산 기슭에 까치가 날아다닌다. 까치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 바람이 부는 날 짓는다는데, 나도 요즘처럼 폭풍우 같은 시련이 있을 때 인생의 집을 점검하고 닦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요즘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여기기 쉽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봄이 오니 진정 봄 같다’는 춘래여진춘(春來如眞春)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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