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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신순호와 오건해 모녀이야기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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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9  17: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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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당차고 야무진 모습이다. 짙은 눈썹과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에서 결기가 느껴진다. 단발머리 앳된 여학생 시절 신순호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다. 어머니 오건해는 강직하고 굳세 뵌다. 이들 가족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세상에 이렇게 살다 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들의 걸어간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신순호, 그녀는 어머니 오건해 여사와 함께 청주출생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로 나란히 섰다. 딸을 보면 그 어머니를 알 수 있고, 며느리를 들이려면 친정어머니를 보라 했던가.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아버지 신건식과 함께 부녀 독립운동가로, 남편 박영준과 나란히 부부독립운동가로의 삶이 전개된다. 친정과 시댁, 양가 모두가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투신한 집안이다.

신순호(1922~2009년)는 신건식, 오건해 부부독립운동가의 외동딸로 태어난다. 네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상해로 아버지를 찾아가면서부터 그녀의 삶은 이미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독립운동의 활동지 여건에 따라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성장하여 1937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게 된다. 주요활동은 선전물 배포, 시위, 가두행진, 연극공연을 통해 독립운동을 홍보하는 것이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군되면서 정식 입대를 한다. 당당한 여군으로 총사령부에서 근무를 시작으로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머니 오건해(1894~1963)는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는 물론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직접 참여하였고, ‘해방 한국독립당원’으로 활동을 한다. 이동녕 선생, 김구 주석의 병수발이며 섭생까지 지극정성 도맡아 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과 호형호제하는 박찬익의 뒷바라지는 후에 사돈으로 엮어지게 된 계기가 된다. 당시 박찬익을 찾아온 그의 아들 박영준은 아예 한 집에서 기거했다. 순호와 영준은 운명적으로 부부될 연이 닿아 있었나 보다.

박영준은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교포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 상해로 건너간 후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담하여 신순호와 같이 항일 활동을 전개한다.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이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임시정부 한인청년회 문화부와 총사령부의 일을 맡아 했다. 이들 부부는 해방을 맞이하고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독립운동의 마지막 단계인 교민의 귀국 문제 마무리하고 1948년 4월에 귀국했다. 초록이 싱그럽게 움터오는 고국의 땅을 밟았을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버지 신건식과 어머니 오건해는 외동딸네 집에서 같은 해에 별세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고, 남편 박영준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그녀 역시 197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가족이 모두 국립현충원에 함께 잠들어 있다.

부부간, 부모자식간 이들 가족의 관계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민족적 동지로 나라를 지켜온 대한민국의 역사다. 암울했던 그 세월을 타국에서도 이겨내지 않았던가. 그래, 봄은 그렇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려니. 꽃비가 눈부시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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