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월요일아침에]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중국 춘추시대에 소(牛)의 피는 매우 신성시되었다. 제후들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 조약을 맺을 때 소의 피를 함께 나누어 마셨을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종을 제작할 때 마지막 의식이 종에 소의 피를 바르는 것이었다. 그것을 '흔종(鍾)'이라 하였다. '이양역지(以羊易之)'라고 하여 맹자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제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임금이 거동하는데 한 사람이 소를 끌고 가고 있었다. 임금이 유심히 보니 소가 울고 있지 않은가, 임금이 물었다. "왜? 저 소가 눈물을 흘리느냐?" 그러자 신하가 대답했다. "저 소는 흔종을 위해 끌려가는 것인데 그것을 소가 알고 우는 것입니다". 

신하로 부터 이 말을 듣고 임금은 즉시 소를 놓아주라고 명한다. 그리고 소 대신 양으로 흔종의 의식을 치르라고 했다. 임금의 눈에 우는 소(牛)는 보이지만 그 대신 죽을 양(羊)의 희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다. 말하자면 임금과 울고 있는 소의 '관계'이다. 이 '관계' 때문에 죽고 사는 엄청난 결정이 바꿔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하가 임금에게 '소'는 불쌍하고 양은 왜 그렇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임금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지적을 하였다.

이처럼 어떤 관계에 서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소와 보이지 않는 양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코로나 사태로 빚어진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긴급처방으로 엄청난 돈을 풀고 있다. 한 때 지급 대상을 놓고 선별 지급하자는 주장과 전 국민이 다 당한 것이니 소득·직업 가리지 말고 무조건 다 지급하자는 주장으로 맞서다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찬반이 모두 맞는 말이나 누구를 소로 보고, 누구는 양으로 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형평성을 잃어가면서 나라를 이끌어 가면 수레바퀴처럼 소리가 요란 스러울 수 밖에 없다. 수레는 한쪽이 기울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라고 해서 이번에도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지방자치단체 간 형평성을 잃고 서울시는 어떻고, 경기도는? 충청도는? 하고 차등이 생기면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형평성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환자의 치료는 신속함에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죽고 나서 처방을 내려봤자 늦은 것이다. 때(時)를 다스리는 것이 국가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소와 양, 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음의 '관계'없이 전 국민에게 지급하고 있는 것은 정말 잘 하였다. 

이런 재난지원금이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공돈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그냥 '공돈'이 아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투입된 세금이다. '한몫 챙기겠다'는 인식보다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마중물'이라는 현명한 소비·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전국 곳곳의 상가에서는 빈 바구니에 물건이가득 차 보였고 계산대엔 다시 긴 줄이 서 있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이같이 현명하게 쓸 곳을 못 찾겠다면 자발적 기부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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