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모처럼의 여유로 마음의 빗장을 풀고 초록으로 휘감은 대청호반 둘레 길을 따라 나섰다. 유월은 초록으로 빗어 내리는 시간속의 공간이다.

바람결에 출렁이는 벼 포기를 스쳐 온, 바람 속에 서 있으면 모두 초록 물이 든다. 유월의 들녘은 어디를 보나 한 폭의 수채화다.

그 곳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호수인지 숲인지 경계 없는 공간으로 수행하듯 서있는 은백양 나무가 파도소리를 읊는다. 소나무는 향기를 품어내고 키 낮은 풀잎은 저희들끼리 소근거리고 떡갈나무 숲은 왁자지껄 살아가는 우리네의 평범한 일상처럼 수다스럽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자라는 키 낮은 풀꽃도 그 곁에 고요히 머무는 호수도 서로의 몸을 뒤섞는다. 떨어지는 빗방울조차 초록이 된다.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함께 머리를 두는 유월의 숲이다. 유월의 숲은 바람과 나무와 물이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므로 숲은 향기롭다.

숲은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낸다. 바람과 나무와 나뭇잎이, 다른 나뭇잎과 또 다른 나뭇잎들이 바람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내는 소리들은 음률이 되고 잘 어우러지는 화음이 된다.

숲의 선율을 따라 바람과 햇살이 너울너울 동행을 한다. 나그네도 둠칫둠칫 육신을 흔들며 따라간다. 무의식 속, 태고의 어느 공간에 머무는 듯싶다. 아늑해진다. 평화로워진다. 불안했던 마음이 제 자리를 찾아 간다.

요즘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다. 70여 년 전 아직도 잊지 못한 유월의 한이 서려있는데, 또 다시 시작 되려 하고 있다. 유월에 잔인한 비보가 자꾸만 날아든다. 억지스런 북측의 도발과 위협에 한반도는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 북의 무모한 행동은 그들의 계획대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난국에 대처하여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고통이지만 과정이 되고 과정은 희열의 시간으로 가는 유월의 숲처럼, 평화의 길로 소통되는 길이길 간절히 바래본다.

초록 물결을 따라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도 청년들도 어른아이 구분 없이 이 시간과 공간에선 모두 숲이 되고 바람이 되어, 한 폭의 그림이 듯 아름다운 풍경인데, 오솔길로 잔잔하게 피어있는 들꽃도 여리고 가는 몸을 살랑이며 작은 입술로 부르는 노래가 평화로운데, 이 아름다운 화폭은 영원토록 그려져야 할 일이다.

유월의 숲이 평화로운 건, 피 흘려 지켜 낸 호국 영령들의 넋이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어 우리 곁을 수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였고 형제였던 호국 영령들의 희생을 되새기며 이 땅에 평화를 위해 모두 한 마음이어야 한다. 둘이 하나가 되는 일엔 고통이 따른다. 각각의 다른 성향들이 부대끼며 낸 상처에 서로의 진액이 흐르고 섞이며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쓰리고 아리기만 할까! 그 고통의 깊이는 말로 표현하기조차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생체기들이 아물어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희열이 되었으면 한다. 유월의 숲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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