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역지사지(易地思支), 바꿀 역/땅 지/생각 사/ 가를 지. 남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다는 의미다. 맹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됐다. 내용은 이렇다. 우(禹)는 홍수를 잘 막아 치수(治水)에 성공한 인물로 유명하다. 후직(后稷)은 '농업의 신'으로 숭배된다.

맹자는 이들을 논하면서 "우 임금은 천하에 물에 빠지는 이가 있으면 자신이 치수를 잘못해서 그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그가 굶주린다고 생각해서 백성 구제를 급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한다'는 뜻인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라는 말이 이 때 나왔다. 맹자는 그와 유사한 표현으로 역지즉개연(입장을 바꾸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표현이 역지사지의 유래라는 것이다. 역지사지와 걸맞는 사자성어로 "자식 길러봐야 부모 사랑을 안다"는 뜻이다. 

반대말에 적당한 것이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자기 논에만 물을 댄다는 의미다.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역지사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의미대로 행동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어떤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개원이 됐으나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출발 부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절대 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갖겠다는 입장이다. 미래통합당은 이에 반발하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외 현안들이 시급한 마당에 원 구성이 계속 지연되는 것은 유감이다. 코로나19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이같은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게 한다.

여야가 협치하며 당면현안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일하는 국회'를 표방하는 21대 국회가 파행을 겪는다면 국회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이렇게까지 갈등을 겪은 예는 없었다. 17대 국회 이후 야당이 맡는 것이 관례였고 직전 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을 이번 여당이 '적폐'라는 이름을 씌워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일이 불거졌다.

'남 눈의 티만 보고 내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과거 국회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몽니를 부릴 대로 부리던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돌려온 것인데 집권 여당이 차지 한다면 개인으로 보면 양심이 없는 짓이고 조직 간의 관계로 보면 신사협정을 깬 것이다. 

여야의 합의로 만든 이상 그것을 바꿀 때도 여야의 합의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되면 상당기간 야당의 협력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국회가 시작부터 삐끄덕 거리며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이번 만큼은 '역지사지'가 넘쳐나는 국회 운영을 보고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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