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각종 SNS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면서 부럽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타인이 올린 자료에 남긴 댓글이 주된 출처인데 그럴 때마다 너무 쉽게 부럽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멋진 곳을 여행하거나, 가족과 지인들과 화기애애하게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장면일지라도 이면에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다. 또한, 그에 따른 노력도 무수히 이어졌을 것이다.

부러움은 질투라는 감정으로 번질 수 있다. 한 사람이 맥없이 무너지는 이유 중에 두 가지가 질투와 배신을 이기지 못해서란다. 이런 감정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으려면 행여라도 남을 부러워한 나머지 질투라는 감정까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공과 행복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족한 결과를 얻기 위해 그에 버금가게 피눈물 나게 노력을 해야 하며 부러워하기보다는 같이 기뻐하거나 혹은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기보다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찾는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현명하다.

기업체에서 일하는 두 명의 자식이 있다. 가끔 자식들이 사주는 밥을 얻어먹곤 하는데 낳고 기른 점을 생각하면 그쯤이야 당당하게 먹어도 되련만 얻어먹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부모만이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도 부모를 키운다고 생각하는 점 외에도 고된 직장생활을 이겨낸 피땀의 결실이라 단 한 푼도 허투루 자식 돈을 쓰지 않길 바라서다.

특히 한 명은 정규직 직원이고 다른 한 명은 비정규직 직원이라 임금의 양극화 현상을 자식을 통해 피부로 절절하게 실감해서 더욱더 그렇다. 최근 보도되는 인천공항 공사의 보안검색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대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했다. 과반수가 넘는 55.4%가 전환을 찬성했고 반대는 26.2%에 불과했다. 물론 공공부문만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였지만 근로자라면 누구나 언제 잘릴지 모를 비정규직 직장에 다니길 바라지는 않는다.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을 이제 그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있다길래 자세히 들여다봤다. 현재의 정직원 숫자보다 정규직 전환 숫자가 많아 불만이며 대학에 다니랴 공부하랴 스펙 쌓으랴 애쓴 취준생 입장만을 내세웠다. 마치 자신들이 맡아 놓은 당상을 남에게 빼앗기는 양 의견 피력을 하는데 청원하는 이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는 기업인가 아니면 현 정부를 무조건 반대하고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어두운 세력인가.

청원 내용에는 단체 카톡방의 대화도 등장한다. 이를 근거로 청년의 평등과 역차별 주장을 하는데 검증되지 않은 대화를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대학 졸업장과 스펙 쌓기를 서열 세우기 근거로 삼는데 아웃소싱 됐던 보안검색 업무가 그들의 취업목표였고 최종고지였다는 말인가. 이에 더해 일부 언론은 취준생의 일자리를 가로챈다고 젊은이들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는 애초 비정규직이 없었다. 비정규직의 시초는 1996년 12월 26일이며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이 자기들끼리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 조정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 이후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 개악을 날치기 단행하여 파견 근로제와 변형 근로제를 도입하여 허용하였으며 이때부터 비정규직의 비극이 시작되고 말았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나쁜 사회악은 지금이라도 없애야 한다. 정규직 전환이 무분별하다는 의견은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며 정부와 기업, 정규직 노조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 같이 양극화를 깨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남이 잘되는 꼴은 보기 싫다거나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등의 서툰 감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정신을 건강하게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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