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내려도 좋으련만 오늘은 천둥 번개까지 치면서 발악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령을 하는 것 같이 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쓰고 비오는 거리를 걷고 싶다거나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죄처럼 느껴진다.

딸내미는 또 공부 핑계대고 보따리 싸 비행기타고 비는 극성스럽게 내리고 나는 괜스레 심통 난 말괄량이 마냥 시비 붙을 때가 없을까 여저기 기웃거렸다. 비도 오고 오랜만에 밥 먹으면서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만만한 도깨비들을 불러냈다.

밥 먹으며 한잔 한잔 받아 마신 소주가 속에서 불을 지폈다. 울렁거리더니 머리는 터지게 아프고 급기야 구토가 나기 시작 하더니 멈추질 않는다.

남편 옆에서 화장실 들락거리기 민망하여 딸아이 방에서 소리 죽여 가며 토했다.이렇게 힘든 술을 어떻게들 마시는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위대 해 보이는 밤이었다.

아침에 남편이 "당신 잠 못 잤지? 이기지도 못 하는 술은 왜 마셔?" "어머 당신 나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는 거 알았어요? 그런데 어쩜 등 한 번 안 두드려줘요?" "사랑 식은 지 오랜데 몰랐어?" "그렇게 쌀랑하게 식은 거유?" "식은 정돈 줄 알아 냉동실로 들어 간지 오래야 이 사람아." 싱글싱글 웃으며 말 한다.

하긴 30년 가까이 함께한 사람들이 어디 사랑으로 만 살겠는가. 서로에게 향한 연민이겠지.

냉장실에 들어갔으면 그냥 말라 비틀어졌을 텐데 그래도 냉동실로 들어 가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온에 내 놓으면 언제든 다시 뜨거워 질 수 있으니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로 쓰린 속을 달래며 사랑이 보관이 되는 거라면 변하지 않게 냉동실에 오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올 여름 휴가 계획을 조촐하게 세워 봐야겠다.

▲ 김용례
청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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