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요즘에 와서 자전거 여행족이 부쩍 늘었다. 여행뿐만 아니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쇼핑을 즐기며 학교를 오가는 교통수단으로도 애용하고 동호회까지 만들어 산으로 들로 운동을 떠나는 등 자전거 타기가 시대의 유행이자 스타일이 되고 있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웰빙과 웰니스의 시대정신도 나름대로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도시의 일상이 어깨를 짓누를 때, 머릿속이 잡다한 것들로 부스럭 거릴 때 자전거 바퀴에 몸과 마음을 기대면 한결 상쾌해 지기 때문에 마니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여럿이 모이면 수군대는 이야깃거리 중에도 자전거가 빠지지 않는다. 승용차가 대중화 되면서 자전거 시대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더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는 비명에서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자전거 가게를 차렸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어느 도시, 어느 길목이 자전거 여행에 좋은지 정보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담론의 핵심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처럼 헐겁기 짝이 없다.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할 것 같더니, 어느 덧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아찔하고 숨막히는 쾌락을 즐기고 있다.

경기불황에다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할 때는 적은 비용으로 추억과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여행거리를 찾게 마련인데 자전거 여행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행이란 삶에서 혼탁한 것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 삶의 영감을 다시 채워 넣는 일이다.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과정이 될 것이고 자연과 소통하는 순결한 시간일 수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텅 빈 마음의 곳간에 이야기보따리를 주워 담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승용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보다는 자전거 바퀴를 구르며 길을 따라 나선다면 그 길에서 소중한 보물들을 찾게 될 것이다.

확 트인 신작로를 따라가다 보면 논두렁 밭두렁이 흘러오고 흘러간다. 축 쳐진 촌로의 어깨 너머로 구릿빛 얼굴이 스쳐가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햇살 등짝 두드리는 소리가 마뜩할 뿐이다. 해가 지면 가던 길 멈추면 그만이고 길 위에서 만나는 자연에 기대어 하룻밤 이슬을 맞아도 좋다. 달빛과 바람의 은밀한 속삭임을 엿듣고, 때로는 훈수들며 오지랖 넓다는 핀잔을 들으면 어떤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모두가 벗이고 맑은 생명이며 구름 같은 것들인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한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는 20리 길을 걸어서 학교 다녔고 읍내로 중학교를 가면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버스가 아침저녁으로 한번 씩 들어오긴 했지만 비바람 불고 눈오는 날이 아닌 이상 자전거를 타고 삼십 리 길을 오가야만 했다. 페달을 구를수록 눈썹 휘날리며 씽씽 달리는 멋도 있었지만 물구덩이를 피하지 못해 교복을 더럽히거나 체인에 바지를 찢기고 기름때 묻혀야하는 슬픔도 있었다. 게다가 버스나 트럭이라도 지나갈 때는 푸석거리는 흙먼지와 메케한 매연가스를 뒤집어 써야 했고 달리던 도중에 '빵꾸'라도 나거나 체인이 끊어지는 날에는 날벼락에 생고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놈의 지긋지긋한 시골생활과 가난을 청산하겠노라 이를 악물기도 했다.

자전거에도 아름다운 삶의 지혜와 미학이 있다. 두 발로 페달을 힘차게 구르는 한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는다. 뒤로 가는 법도 없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 언덕을 오를 때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고 목마름에 덜거덕 덜거덕거리는 불우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상쾌하고 기분 좋은 휘파람을 불러댄다. 이따금씩 먼지를 뒤집어쓰고 물구덩이를 거쳐야 하는 서러움도 있겠지만 풀과 나무, 바람과 햇살, 꽃과 새들을 지척에서 만나고 다정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미덕도 있다. 그러니 자전거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그대로 닮았다. 회색도시에서 퍼덕거리지 말고 자연에서, 자전거 생활에서 삶의 미학과 생활의 지혜를 배워야겠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