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시인

[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시인 

산책길에 나선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우산을 가지고 나선다. 요즈음은 마스크와 우산이 외국 갈 때 여권처럼 선택이 아닌 필수 불가결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도 힘든데 지루한 장마로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코로나 19도 소나기를 피하는 것처럼 단기(短期)로 알았는데 올여름 장마처럼 장기화되고 있어 큰 걱정이다. 장마는 머지않아 물러나겠지만,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암울하다. 군집해서 피어있는 자그마한 흰 꽃을 보니 기분전환이 좀 되는 것 같다. 망초꽃으로 알았는데 개망초꽃이란다. 이처럼 잘못 사용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요즘 들려오는 '1도 없다.'를 '하나도 없다.'로 정정해야 하는 것처럼.

망초와 개망초는 키는 망초가 더 크고, 꽃은 구분하기 쉽다. 개망초가 꽃이 더 크고 분홍색이 돌며 예쁜 편이다. 계란꽃이라고도 하는 더 예쁜 것에 '개'자를 붙여 궁금하였는데,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냐는 우리 선조들의 분노에서 그렇게 되었다니 공감이 간다. 

지나가는 아가씨들이 개망초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곳은 꽃밭이 아니라 길 쪽의 가장자리에는 영산홍 등 꽃나무를 심고, 잔디를 심고 가꾼 작은 공원이기 때문이다. 관리를 잘 했을 때는 파란 잔디밭에 눕고 싶도록 예쁘고 포근하였는데 언제부턴가 잡초밭으로 변했다. 지금은 큰 풀에 덮여 잘 보이지 않지만, 지난봄에 지나다보니 토끼풀(크로바), 망초, 씀바귀, 바랭이 등 잡초가 주인인 잔디를 뒤덮고 질식시키고 있어 몇 포기 뽑아주기도 했다. '예산 부족과 일손 부족으로 불가능할까? 공공근로사업으로 잘 운영해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욕심도 생긴다. 공원을 조성할 때에는 많은 예산을 들여 잔디밭을 조성했지 않은가. 이럴 바에는 아예 잔디를 심을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언젠가는 예초기로 깎아주긴 하겠지만…….

망초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철도가 건설될 때 사용되는 철도침목을 미국에서 수입해 올 때 함께 묻어 온 귀화식물이고, 철도가 놓인 곳을 따라 흰색 꽃이 핀 것을 보고,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이 꽃의 씨를 뿌렸다 하여 망국초라로 불렀고 다시 망초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국어사전에서 '망초'를 찾아보니 한자(漢字)로 '亡草'도 아니고 한글만 있지만, 망초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구한말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꽃으로, 망초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면서 을사늑약이 맺어져 나라가 망한 누명을 썼던 것 같다.

잔디밭이 아니라 잡초 천지가 되는 것을 보고 섬뜩한 경각심까지 든다. 만약 나의 바른 생각이 그릇된 생각에게 진다면, 면역력이 떨어져 코로나 19나 질병이 퍼진다면, 질서가 무너져 무법천지가 된다면, 양심과 효(孝)와 도의(道義)가 무너져 선(善)이 악(惡)에게 진다면, 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이 된다면, 편향된 이념과 편 가르기로 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위태롭다면…….

잔디밭에는 잔디를 가꾸어야지 개망초 같은 잡초가 점령하여 주객전도가 되는 것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 등을 반드시 막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산책길에서 되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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