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54일이나 계속되며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우던 장마가 마침내 끝났다. 기록적인 폭우로 재산피해도 적지 않고, 농작물 피해도 심각하다는 소식이다. 이미 야채값은 많이 올라있고 과일이나 기타 농작물의 가을 수확도 예년과 같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의식주 중 입는 것과 사는 곳은 부족하면 불편하지만, 먹는 것은 불편을 넘어 생존과 직결되니 의식주 중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머리뼈의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얼굴 모양이나 뼈의 형태는 틀려도 모두 동일하게 28개의 단단히 맞물려 있는 머리뼈를 가지고 있다. 단 하나 예외적으로 움직이는 큰 뼈가 아래턱뼈다. 이렇게나 씹고 먹는 것은 생존에 있어 중요하다.

어느 생태학자가 세계 각국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 생물로부터 오는가를 조사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인류의 식탁에 오르는 동식물의 개체는 대략 5,000종이라고 한다. 반면에 우리 인간을 먹는 동물은 대략 1,00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을 통째로 삼키는 큰 동물부터 모기나 벼룩처럼 신체의 일부를 빨아먹는 것을 다 포함해서 그렇다고 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먹는 대부분은 사실 다른 동식물의 시체다. 생존이란 현실은 우아하게 포장해서 그렇지 서로가 먹이가 되는 종끼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다.

인간은 대체로 다른 생명체를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활용 가치로 평가한다. 하나는 식량이나 자원으로 활용하는 물질로서의 유용성이고 또 다른 것은 정서적 유용성이다. 극단적으로 분류하면 동물의 경우 인간의 식량이 되는 경우와 반려동물이 되는 경우에만 인간에게 유용하며 그 기준은 전적으로 인간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한다. 다른 동물을 죽여서 자신이 기르는 애완용 동물의 사료로 만들 뿐 아니라, 구워놓은 소의 신체 일부를 먹으며 애완동물을 예뻐하며 쓰다듬는 것이 인간이다.

애완과 음식의 구분은 그 동물에게 얼마나 감정이 있고 인간과 유대감이 있느냐인데, 개까지는 감정이 있고 돼지부터는 감정이 전혀 없는 동물이라고 결정하는 것이 이상하듯, 이러한 판단 또한 의문투성이이다. 결국 인간의 주관적 판단으로 타 생명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것인데 이는 이기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명현상과 생존이라는 게 어차피 타 생물을 에너지원으로 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다른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현실을 또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다.

이렇게 먹고 먹히는 전장 같은 현실에서, 먹는 수를 늘리고 먹히는 수를 줄이는 게 문명의 발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순전히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다. 먹이가 되기를 거부하며 숲으로 들어갔던 대부분의 동물은 거의 멸종상태에 이르렀다. 개체 수를 늘리며 번성한 동물들은 소, 돼지 닭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음식을 제공하거나 기껏해야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과의 공감을 통해 위안을 주는 일부 동물뿐이다. 어쩌면 타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의 이기심이야말로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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