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예년보다 유독 길고 지루한 장마였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공허만이 있을 뿐이고, 폭염으로 쏟아지는 더위는 자칫 깊은 시름과 짜증으로 빠져들기 십상인 날들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짙은 숙명과도 같은 우울한 빛깔이 심신의 피곤함으로 이어져 헤밍웨이가 전후 1940년대에 허무함 그 자체를 어눌하게 즐겼듯이 나또한 구태여 주변 상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피조물이 되어 맘속에 내재하고 있는 허무함을 반추해 본다.

우리는 아무리 현실이 팍팍하고 가파르다 해도 어느 한 순간쯤은 앞날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이유 없이 뛰기만 하였을 뿐 막상 손바닥을 펴보면 결국엔 삶의 찌꺼기만 몇 개 쥐어져 있을 것 같은 삶속에서....... 그러기에 무엇인가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함을 느꼈을 때 쉽게 시작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음을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청년시절 나는 내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대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의 삶을 돌이켜 보건데 항상 어떤 일에 쫓기듯 생활했던 나를 발견하고 몹시 놀라곤 한다. 시한이 정해져 꼭 끝마쳐야 하는 일들이 내 등을 억지로 떠미는 것 같아서 곁을 바라볼 여유도 없는 날들을 보내기 일쑤였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떤다든지 단 며칠만이라도 가슴에 와 닿아 젖어있을 수 있는 책이라도 한권 읽어야지 등등의 생각들은 머릿속에만 접어두는 일들이 다반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늘 허무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만 맴돈다. 나 자신의 계발을 위한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빠서 나로 인하여 숨이 꽉꽉 막히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든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이란 일에 치어 쫓기듯 사는 것도 아니고 쫓기어 해내는 일들이 지상최대의 중요한 일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학문이나 인품 면에서 무척 존경하고 따르고 싶었던 스승님이 한 분 계신다. 삶의 주변은 언제나 고요하였으며 정년퇴직을 하신 후에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분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스승님 자신만의 삶 속에 고인 고즈넉함을 홀로 지켜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자신의 적적함과 고요함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지 짐을 정리하시고 평생을 활동하셨던 무대를 조용히 떠나셨다.

세상에는 우리들 때문에 숨이 막혔던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히 알 수 없을 어떤 기억은 타인이나 상황이 아닌 나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만큼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을 흔하게 뇌까린다. 나는 이 말은 60부터는 제발 타율에 의해 쫒기는 일 없이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흘러가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아직 오랜 세월이 남아있지만 ‘벌써’ 가 아니라 ‘드디어’ 라는 반가움으로 그날들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하는 바람 때문이다.

가끔 바람이 부는 밤이면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골목에 서서 내 자신의 모습을 한발치 떨어져 마주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그날들이야 말로 진정한 내 삶의 날들이요 내가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는 세월일 것만 같아서이다. 바쁨과 쫓김에 길들여져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도전의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면 다시금 반복될 덧없는 세월의 아쉬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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