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접시꽃이 피어 있는 풍경

▲ <삽화=류상영>

들례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옥천댁에 대해서 계속 물었다가는 술상이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옥천댁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던 기분이 착 갈아 앉는 것 같았다. 그려, 안직은 모르는 일. 옥천댁이 또 딸을 낳는다면 나한테는 더 유리한 일이 된다는 걸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지. 그런걸 보믄 난 참으로 그를 때는 둔한 년이여. 이럴 때는 이동하를 자극하지 않고 차분하게 훗날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 앉았었다.

키가 작은 꼬막네가 춘임이의 뒤를 따라서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따라 들어왔다.

들례는 꼬막네를 보는 순간 지금까지 참고 있던 화가 봄눈처럼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벌떡 일어서서 춘임에게 대문 단속부터 하라고 시킨 다음에 안방으로 들어갔다.

"왜 인자 왔느냐고 묻지는 않겄어. 면장님한테 들키믄 목숨이 살아남을지도 모르는디도, 춘임이를 시켜서 모산 큰 댁 독구를 죽였어도 말짱 헛일이라는 말도 않겄어. 인제 발등에 불이 떨어 졌응께 어여 비책을 말해 봐."

들례는 꼬막네에게 귀한 설탕을 시원한 물에 타서 대접했다. 꼬막네가 설탕물을 마시는 동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츠, 이 꼬막네가 뉘여. 춘임이가 옥천댁 마님 보약을 하라고 잉어를 갖다 줬는데 누가 감히 의심을 한다는 거여. 그것도 넌지시 부면장님한테 말을 해서, 부면장님이 심부름을 보내는 모냥새를 갖추었잖여. 그런 춘임이가 개한테 쥐약을 줬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믄 내가 신어무니로 뫼시지. 암, 뫼시고 말고."

꼬막네는 급할 것이 없다는 얼굴로 천천히 설탕물을 마신다.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지만 마음속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공수를 내려주는 최영장군의 말에 위하면 옥천댁은 이번에 반드시 아들을 출산한다. 그래서 아들을 유산시키게 할 목적으로 면장댁에서 기르는 개를 죽였다. 그런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어쩌면 옥천댁이 품고 있는 아이의 운명이 들례의 운명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들례에게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언가 다시 비책을 제시하기는 해야 한다. 춘임이가 집에 찾아 왔을 때부터 묘안을 짜 봐도 들례가 찍소리 하지 못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말은 그기 아니잖여. 독구를 죽인 거는 춘임이하고 꼬막네만 입을 다물믄 쥐도새도 모르는 일잉께 그릏다고 쳐. 꼬막네 말대로 옥천댁이 이번에 낳는 아가 틀림없는 머스마라믄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잖여. 내가 시방 하고 싶은 말은 그 비방을 내 놓으란 말여."

들례는 꼬막네로부터 옥천댁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몇 번이나 비방을 했었다. 이동하 모르게 쌀 다섯 가마니짜리 굿을 두 번 했고, 둥구나무 거리에 짚으로 옥천댁의 인형을 만들어 흰실로 목을 매서 파묻어 놓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면장댁에서 기르는 개가 죽으면 옥천댁이 유산을 할 거라는 말에 춘임을 시켜서 쥐약을 놓아 개를 죽였다. 그런데도 모산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속이 바짝바쩍 탔다. 꼬막네에게 바짝 붙어 앉으면서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는 얼굴로 당겨 앉으면서 채근을 했다.

"방법이 영 읎는 거는 아니지."

꼬막네는 들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들례는 꼬막네의 눈동자가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속에 주춤 뒤로 물러나 앉았다. 꼬막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기 뭔 방법이여?"

들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물었다.

"요새 부자들은 설탕물을 자주 타 마신다든데 다 이유가 있었구만. 난 시방까지 살아오믄서 찬물이 수박화채보다 더 달다는 걸 츰 알았구먼. 대관절 이 설탕 한 포에 얼매씩이나 하는 거여? 누구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한 근에 백 환이 넘다고 하든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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