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딱지치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믄 정상이 아니지. 원래 딱지치기 잘하는 아는 공부를 못하게 되어있고, 공부를 잘하는 아들은 공부에 신경쓰느라 딱지는 못치는 벱여."

상규네가 금방이라도 상규를 쥐어박을 듯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박태수는 상규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규의 등을 툭툭 두들겨 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규는 상규하고 강성이네 집에 딱지 따먹기를 하러 나갔다. 인자는 상규네가 설거지를 할 동안 인숙이를 업고 밖에 나갔다. 또래 아이들은 달빛 아래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다. 인자는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부럽지도 않다는 얼굴로 고무줄 놀이하는 또래를 멀거니 지켜보고 있다.

상규네는 설거지를 끝내고 다른 날처럼 인자를 부르지 않았다. 박평래가 마실 자리끼를 떠다 준 후에 변소에 들려 볼일을 본 후에 안방으로 들어갔다.

"요새 암소 한 마리에 얼매씩이나 해유."

"그걸 내가 워티게 아나? 내가 소 장사도 아닌데?"

"그래도, 학산에 장작 팔러 가서 들은 소문이라도 있을 거 아뉴?"

"나하고 상관있는 일이라믄 옆 사람찌리 귓속말로 주고받아도 들리겄지. 하지만 내 평생 소를 살 일도 읎고 팔 일도 읎는 일이라서 딴 사람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지……"

박태수는 상규네가 다짜고짜 묻는 말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적삼 주머니에서 파랑새 담배를 꺼냈다.

"소 살 일이 생길지 안 생길지는 워티게 단정을……"

상규네는 박태수가 들고 있는 파랑새 담배를 뺏고 재떨이 옆에 있는 담배쌈지를 앞으로 내민다.

"머여, 그람 우리가 소를 사게 생겼다는 말여?"

박태수는 돈을 관리하는 상규네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지 못했다. 막연하게 천수답 한마지기 살 정도는 모았을 거라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규네가 갑자기 소 운운하는 말에 귀가 번쩍 열리는 것을 느끼며 바쁘게 물었다.

"시방부터 내가 하는 말을 죙히 들어봐유."

상규네가 갑자기 목소리를 착 내려 까는 바람에 박태수는 봉초를 종이에 말다 말고 멀뚱한 눈으로 쳐다본다.

"면장님이 이븐 가실에는 둥구나무거리에 있는 논을 내 논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상규네는 호롱불 심지에 돋구고 작년에 상규가 입던 무명 홑바지를 찾아 들었다. 기장을 줄여서 올해부터 진규에게 입혀야겠다는 생각에 반짇고리를 들고 호롱불 앞에 앉는다.

"그런 소문이 있지. 하지만 그기 우리하고 먼 상관인디? 당신 설마 그 땅을 우리가 부쳤으믄 하고 쓰잘떼기 읎는 욕심 부리는 거는 아니겄지?"

"애시당초 그런 생각이 있다믄 내가 진작에 큰 마님을 찾아 갔지, 당신한테 말도 끄내지 않았을뀨. 그렇다고 강건너 불 구경하고 있었다는 야기는 아뉴. 만약 우리가 그 논을 부칠 수만 있다믄 도합 면장댁 논 스무마지기를 부치게 되는 꼴이 되고, 스무 마지기에서 열 마지기는 떨어징께 딸내미들은 포기해 버리고 상규, 진규는 그럭저럭 고딩핵교를 보낼 수는 있겄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거유. 하지만 그건 당신 말대로 스잘떼기 읎는 꿈같은 야기잖유. 워틱하믄 우리 자식들을 죄다 고딩핵교까지 보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슈."

"백날 생각해 봐야, 결론은 하나겄지.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황새가 한 걸음 뛸 때, 뱁새는 열걸음 뛰면 충분히 승산이 있슈."

"오랜만에 고등어 대가리 한 개 주고 별 개똥같은 야기만 하고 앉아 있네. 황새가 뱁새한테 턱졌어? 친구하고 앉아 있게."

"내 말 잘 들어 봐유. 우리도 소 한 마리만 있으믄 자식들을 얼매든지 공부 갈킬 수가 있슈."

상규네는 눈짐작으로 바지 길이를 잘랐다. 말을 하면서도 손은 자른 부분을 실로 홀쳐 감아 나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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