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생각이 장하구먼. 땅이라고는 자갈밭 몇 떼기 벢에 읎는 집에서 그 비싼 소는 워티게 사고."

"면장님댁 소가 있잖유, 그걸 공짜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슈?"

"며……면장댁 소라고?"

박태수는 면장댁 소라는 말에 불덩이처럼 뜨겁게 안겨들던 옥천댁의 얼굴이 떠올랐다. 꿈인가 싶으면 생시고, 생신가 싶으면 한순간의 꿈처럼 기억되는 그날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당신 왜 그릏게 놀래유?"

"아……아녀. 놀래긴 누가 놀란다고 그랴."

"내가 볼 때는 꼭 도둑질 하다 들킨사람 처럼 뵈네유. 좌우지간 면장님댁 소를 외상으로 살 수 있는 기맥힌 방법이 생각났슈."

"아! 면장댁 소가 송아지여? 송아지라믄 병작소로 내 달라고 사정이라도 해 본다지만 그 소는 다 큰 소여. 다 커서 달구지를 끌고 댕기는 소를무슨 수로 산다능겨?"

박태수는 상규네의 기막힌 생각이 궁금했다. 어느 사이에 가슴 속에 뜨겁게 들어와 앉아 있는 옥천댁의 향기를 지우려고 일부러 화를 냈다.

"지 말 안진 안끝났응께 승질만 내지 말고 차근차근 들어 봐유. 옛말에 소 한 마리믄 높 아홉을 읃은 것과 똑 같이 일을 한다고 했슈. 하지만 면장댁에서는 소를 부리는 날 보담 놀리는 날이 더 많잖유."

"그 야 땅을 죄도 도지주고 면장님이 직접 농사를 질 일이 별로 읎응게 당연한게지."

박태수는 상규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그때까지 들고 있던 담배 종이에 침을 발랐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둥구나무 밑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웃으며 노는 소리가 바람 소리와 뒤섞여서 들려왔다. 담배 연기를 뻑뻑 내 뿜으면서 어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들어나 보자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릏다고 소를 키우는 일이 밭에 상추씨 뿌리고 비오기만 지달리기만 하는 것츠름 쉬운 일도 아니잖유. 조석으로 쇠죽 끓여줘야지, 한 달에 한번 씩은 외양간 쳐 야지, 여름이믄 쇠똥 냄새 풍기지, 동리 파리는 죄다 모여 들지. 즘잖으신 면장님댁에 손님이라도 오시믄 그것도 문제잖유."

"집구석에 소를 키우믄서 소똥 냄새나는 거 당연한 거지. 외양간에서 소똥 냄새나는 거 하고 뒷간에 앉으믄 똥냄새 나는 거 하고 머가 다른디?"

"내 말 안즉 안 끝났슈. 그런 골치 거리를 한꺼번에 해결을 하고, 소를 기르는 셈도 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믄 면장님이 워티게 생각하시겄슈?"

상규네는 박태수가 담배 한 대를 피울 사이에 상규 바지를 진규 바지로 줄여버리고 호롱불의 심지를 낮춘다. 호롱불의 심지를 낮추자 방문 위에 올라가 있던 어둠이 방문 중간까지 성큼 내려온다.

"철준아! 샴 가에 가서 철용이 좀 오라고 혀. 물 질러 간 놈이 학산으로 간 것도 아니고, 호랭이한티 물려가지도 않았을 낀데 여즉 소식이 읎다."

문 밖에서 철용네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아무런 여과 없이 방안으로 들려온다. 그녀는 실패와 바늘을 반짇고리 안에 챙기며 박태수를 바라본다. 박태수는 문을 향해 비스듬히 앉아서 어디 마음대로 지껄여 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지 생각에는 면장님 승질로 볼 때 손도 안대고 코푸는 방법이 있다믄 생각해 볼 새도 읎이 결정을 내릴 거유."

"그려서?"

"방법은 간단해유. 면장님댁에 있는 소하고 달구지를 달라고 하셔유. 돈은 일 년에 을매씩 쳐서 이, 삼 년 동안 갚아 준다고 하셔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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