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보리 한 말 머리에 이고 장에 가서 팔아 가지고, 뭣 좀 사가지고 집에 오믄 짝게 잡아도 반나절은 걸려유. 하지만 달구지를 타고 가믄 왕복 두 시간이믄 떡을 쳐유. 모가지가 뿌러지도록 보릿자루나 콩자루를 이고 갈 필요도 읎슈. 어깨 쭉 피고 세월아 네월아 노래 부름서 가거나 한숨 푹 자고나믄 도착하게 해 준다는데야 공짜로는 심들쥬."

"그려, 달구지만 있다믄 나무 해 나르기 바쁘겄구먼. 하루에 두 강다리 반이믄 한 장 도막이믄 열두 동가리 반. 열두 동가리 반이믄 쌀이 및 말이여. 두 말 가웃이믄 삼천육백환 이잖여. 한 달이믄 넉넉 잡에 쌀 한가마니가 떨어진다는 말이잖여. 일 년이믄 열 두가마니, 나락으로 치자믄 열두 섬, 논으로 치자믄 내 논 두 마지기 가웃을 부치는 꼴이 되겄구먼. 거기다 농지세가 나가나 수리조합비가 나가나 방위비가 나가. 순전히 알곡으로 남는 장상께 논 서 마지기 부치는 것이 안 부럽겠구먼. 그라고 장날 열 명만 실어 날라도 보리쌀 한 말은 충분히 벌 수 있을 팅께 것도 장난이 아닐테구. 소하고 달구지를 을매나 받을 지는 모르겄지만 이 년까지 갈 필요도 읎이 한 해만 열심히 하믄 다 갚을 수 있을껴. 그 다음부터는 야지리 남는 장사 아녀. 이러다 우리 및 년 만에 떼부자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

"농사는 안 짓고 일 년 내내 장작장사만 할 할 생각이구먼……"

나무장사는 나락을 베고 난 가을부터 이듬해 보리를 베기 전까지 할 수 있다. 상규네는 흥분한 박태수의 말을 바로잡지 않았다. 그래야 이병호한테 가서 자신 있게 소를 외상으로 달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며 배시시 웃었다.

"타작하고 나서 슬슬 시작해서 보리 필 때까지만 해도 일 년이믄 다 갚겄구먼."

"내년에 당장 상규 중핵교에 가야 해유. 내가 학산 가서 슬쩍 알아 봉께 입학금하고 교복이며 책값만 해도 육만 환은 쥐고 있어야 하드만. 육만 환이믄 쌀이 및 가마니유. 요새 쌀 한가마니에 만팔천 환 한다고 하대유. 그람 세 가마니는 넘고 네 가마니는 안 되는 돈이잖유. 쌀 네 가마니믄 도지 땅이 아니고 내 땅 한마지기를 부쳐야 나올 돈유. 거기다가 분기에 한븐 씩 수업료 들어가지, 여름이믄 하복, 겨울이믄 동복 맞춰 입혀야지. 중핵교를 댕김서 수업료만 준다고 끝내는 일은 아니잖유. 이런 저런 걸 더하믄 한 학기에 쌀 한 가마니 가웃은 우습게 들어간다고 하드만유. 그람 일 년이믄 세 가마니내유. 당장 내년에 상규 앞으로 들어가야 할 돈이 짝게 잡아도 쌀 일곱 가마니유. 부지런히 장작 팔아서 상규 앞으로 디밀면 큰 일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믄 틀림 읎을뀨."

"당신 말 들어 봉께 어뜬 일이 있어도 외상 소를 사야겄구먼."

박태수는 상규네의 말을 듣고 나니까 그 동안 가장으로서 자식들한테 너무 무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겸연쩍게 웃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병호에게 엎드려 비는 한이 있더라도 소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둥구나무 밑에는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지런한 이들은 아침 먹기 전에 또랑 가에서 풀 한 망태를 베다 돼지막에 던져주고 아침 먹기 까지 시간이 남아서. 어떤 이는 거름 한 짐을 밭에 내고 등짝에 축축하게 벤 땀을 식힐 겸 담배 한 대 피울 생각에서, 땅 한 떼기가 없어 거름을 낼 일도 없고, 기르는 돼지나 토끼도 없는 사람은 아내가 아침상을 차릴 때까지 무료하게 앉아 있기가 지루해서. 그것도 이것도 아닌 사람은 식전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하는 생각으로 뒤통수를 득득 긁으며 둥구나무 그늘 아래로 간다.

이른 아침에 둥구나무 밑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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