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에! 두 번째로 드릴 말씀은 이븐에 우리 동리에 비료가 열 포 배당이 됐슈. 생각 같아서는 집집마다 한 포씩 나눠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열 포 벢에 안돼서 부득이, 비료대 미수가 읎는 집 부텀 배당을 해 주고 나서 여분이 있으믄 다른 이들도 생각을 해 줄 모냥잉께. 비료가 필요한 분들은 오늘 아침을 먹는 즉시 저희 집으로 왕림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번 째로는 식전부텀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머 하지만 어제 면사무소에서 있었던 구장단 호의 결과를 말씀 드리겠슈. 다름이 아니라 면사무소 별관 신축 공사를 명년부터 시작을 할 계획이 서 있다고 하네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면사무소 신축공사비쪼로 우리 동리에 배당이 된 금액이 월매냐 하믄, 쌀 다섯 가마니라 이거유. 원래는 스무 가마니가 배정이 된 걸, 이 동리 사람인 부면장님이 심을 쓰셔서 반으로 뚝 짤라 준 것도 부족해서 또 한븐 딱 짤라서 다섯 가마니로 확정을 했슈. 그랑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부면장님의 체민도 있고, 여기 서 있는 구장의 얼굴도 있고 항께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않을거라고 믿겄슈. 신축공사비를 내는 시점은 올 가실 타작이 끝난 담에 집집마다 얼매씩 활당을 하겄슈. 그리 알고 그 때 가서 딴소리 하시는 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황인술은 말을 끊고 동네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다섯 가마니라는 말에 동요의 빛이 역력하다. 하지만 스무 가마니를 반에 반으로 깎았다는 말에 안도의 표정으로 바꾼다. 무식한 것들은 이래서 다루기 편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또 한 가지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솔직히 구장의 신분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기 남살스럽지만 안직도 구장 수곡을 안 내신 분들이 및 분 계셔유. 사정이야 굳이 물어 보지 않아도 딱하시겠지만, 여기 서 있는 구장은 보리쌀도 아니고 달랑 보리 두 말을 못내는 동민 여러분들보담은 더 딱하구만유. 지가 입 추잡스럽게 굳이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리지 않고, 우리집에 있는 광일이 에미한테 물어 보시믄 다 알겠지만 지는 어즈께도 면사무소 호의를 나갔다가 순전히 우리 동리를 위해서 농협조합 직원들 한티 즈녁을 샀슈. 탁주 한 두 되 값이야 내 겟주머니 돈으로 내도 부담이 없슈. 하지만 그 사람들이 탁주에 김치쪼가리만 드시겄슈? 그래서 학산삼거리에 있는 중앙반점에서 빼갈에다 탕수육을 대접했슈. 그런 대접이 한 달에도 대 여섯 번이고, 면서기나 지서 순경들이 출장을 올 때마다 씨암탉을 잡아 대접 한 걸 더 하믄 말도 못해유. 그러다 봉께 느는 것은 조합빛이고, 죽어나는 건 우리집 식구들유. 그런 사정을 일일이 말해주다 보믄 오늘 즈녁때까지 해도 시간이 부족할 뀨. 그랑께 지발 저를 살려 주시는 셈치고, 구장 수곡을 안내주신 분들은 금명간 저희 집으로 보리 두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이상 끝입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셔서 아침 드시고 각자 밭은 바 농사에 전념하시길 바래유."

동네 사람들은 쭈빗쭈빗한 얼굴로 황인술이 하는 말을 다 듣고 난 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식전부터 똥 밟았다는 얼굴로 돌아선다.

"우리 동리 백미 다섯 가마가 배당 되었다믄 한 집 당 얼매 씩 내야 하는 거여?"

"한가마니가 열 말잉께, 쉰 말을 내야 된다는 거잖여. 한 집 당 한말이 넘게 배당이 되겄구먼."

"젠장, 면사무소 신축하는데 왜 우리가 쌀을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겄어. 면사무소가 우리한테 뭘 해주는데?"

"해주는 거는 읎어도 받으러 오는 거는 많잖여. 농지세 부텀 시작해서 면의회의장상부비,지방의회선거비, 병무협의회비, 국민회비, 시국대책비, 도로유지비. 아이구! 식전부텀 세금 명세 외울랑께 머리 쥐나네. 좌우지간 면사무소에서 내라는 돈 잡부금 명세 외울라믄 해전에는 심들어."

"힘들믄 그만햐. 그거 다 왼다고 면사무소에서 상주는 거 아닝께."

"하도 심들어서 하는 소리지."

"도시 사는 사람들한티는 외려 세금을 깍아준다는데 우리한테는 먼 일인지 갈수록 세금이 느는지 모르겄어."

"젠장, 우리도 세금 지때지때 낼라믄 하루빨리 지겟다리 때려 뿌시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디."

"아무나 서을 가나? 빽도 돈도 배운 것도 읎는 무식한 것들은 죙히 농사나 짓는거지."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전해들은 잡부금 공지에 어깨가 축 늘어진 얼굴로 신세타령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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