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낮에 어무니가 면사무소에 찾아 오셨잖여. 거기서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아를 벴다고 하시든데, 역부러 면사무소까지 오셔서 그냥 해 보는 소리가 아닌 거 같아서 하는 말이잖여. 대체 그기 말이나 되는 짓이여?"

"당신 말 참 잘했슈. 당신은 체민이라는 것이 있고, 당신 말대로 배울만큼 배웠다는 지는 체민도 자존심도 읎는 여잔줄 아셨어유?"

옥천댁은 이동하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 점에 안심을 하면서도 너무 서운하고 분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체민을 아는 여자가 그 나이에 아를 베?"

"아를 베고 안 베고가 손바닥을 폈다 오므리는 것처름 지가 맘먹은 데로 대는 거유?"

"허허! 적반하장이라고 하드니, 바로 이런 갱우를 두고 하는 말이구먼. 아! 내 나이가 시방 및 살인줄 알기나 혀? 내 후년이믄 불혹이라는 마흔살이여. 마흔 살. 그라고 공직에 근무를 하고 있는 공인이란 걸 모르고 하는 소리여? 그래도 내가 명색이 학산면의 행정을 책음지고 있는 부면장의 신분이란 말여. 내가 지나갈 때 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손가락질 안하고, 속으로는 저기 부면장님이 지나간다라고 하지 않고, 애기아부지 지나간다 라고 비웃으믄 좋겄어? 그것뿐인 줄 알어. 시방 우리 집에 딸이 및이여. 다섯 손가락에서 두 개 빠지는스이여. 그것도 부족해서 하나를 더 부조하게 되믄 그건 또 무슨 망신여. 시방도 딸부잣집이라고 영동군청에 까지 소문이 났는데 또 딸을 낳는다고 생각해 보란 말여."

"공직에 근무하시는 공인이 첩을 읃어유? 그라고 딸이 스이가 아니고 다섯이믄 워뗘유. 다 내 뱃속에서 키워 내 배 아파 났응께 내 딸 들인데."

"잘났구먼. 삼천리방방곡곡에 잘 났어. 공직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대를 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헌법에 나와 있기라도 한 것 같구먼. 그라고 누가 첩을 읃고 싶어서 읃응겨? 당신이 딸만 내리 스이나 낭께 대를 잇기 위해서 씨받이를 읃다 봉께 그릏게 된 거잖여."

"씨받이하고 첩하고 가텨유? 씨받이를 읃었으믄 그걸로 끝내야지, 벌써 및 년 째유?"

"좌우지간 난 몰라. 앞으로 또 지지바를 낳기만 해봐. 그 때는 내 얼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줄 알믄 틀림없을팅께."

이동하는 옥천댁이 조목조목 따져들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화가 갈아 앉는 것도 아니다. 무엇인가 꼬투리를 잡아서 화를 내야하겠는데 그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휑하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옥천댁은 밖으로 나가는 이동하를 붙잡지 않았다. 이동하가 홱 밀어부친 미닫이 방문을 닫지도 않았다.

"못난놈! 장차 큰 일을 할 놈이 차아암 잘하고 있는 짓이다."

"무조건 승질만 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유. 지성이믄 감천이라고……"

이동하는 대청을 건너서 곧장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사랑방에서 이병호의 거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은댁이 이동호를 달래는 목소리도 간절하게 들려왔다.

옥천댁은 천천히 일어서서 방문을 닫았다. 이동하에 대한 원망이 분노로 변하는 것을 느끼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기를 낳고 말겠다는 결심했다.

옥천댁은 쓸쓸하게 웃는 얼굴로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얼굴의 굴곡이 뚜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닮은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설령 박태수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태수의 얼굴을 닮은 곳이 있는지 이마며, 눈썹, 눈매, 코 입술 턱 선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이의 얼굴은 어려서 그런지 모르지만 박태수를 닮은 곳은 하나도 없다. 안심이 되기는 하면서도 평생 아비를 모르고 살아야 할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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