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일생 동안 살면서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을 위험은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해마다 천만 명의 사람들이 암을 선고 받는다. 발병하는 암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지만, 암이 발생하는 빈도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후진국에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으로 발생하는 암이 좀 더 많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암은 인류의 숙명일까?

분자생물학자들은 세포의 분열을 연구하면서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하는 물질들을 찾게 되었다. 그 중 하나인 담배의 타르 성분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유발되어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몇몇 음식들, 심각한 공해 물질 등도 암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들이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의학자들이 암을 치료하는데 응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담배나 공해물질과 같은 환경적 요인만 통제하면 암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도, 청정지역에 사는 사람도 암에 걸리는 일은 흔히 관찰되기 때문이다. 고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류는 적어도 기원전 시대부터 암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인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척추동물들은 암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쥐라기 시대의 공룡 화석이나 무척추동물 중에도 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암의 특징은 나이가 먹을수록 발생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세포 증식 과정을 겪게 되는데, 암세포는 이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생겨난다. 매일 수천 개의 돌연변이 세포가 생겨나고 또 사라져 간다. 이 과정을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지속하면서 세포분열 시스템을 완벽하게 관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이러한 세포분열 시스템의 통제에 문제가 생기게 되어 암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암 치료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인류가 암으로 고통을 받는 현실이 개선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2004년 미국의 '포츈 fortune'지에서는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암과의 전쟁에서 현대의학이 패배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도 하였다.

현대 의학이 암을 정복하기 위해바라보는 시각과는 달리, 다윈의학 혹은 진화의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관점에서는 인류에게 암이 발생하는 이유를 다르게 설명한다. 진화의학에서는 자연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유전자를 꼽는데, 유전자의 가장 큰 역할은 생식 세포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자손 생산이 이루어진 후에 유전자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은 자연 선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즉 젊은 시절에 배우자에게 선택받을 확률이 높은 유전자는 노년에 많은 문제들, 특히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자손을 생산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요인이 누적되어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나이가 들면서 암이 발생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고 진화의학에서는 본다.

특히 요즈음은 여성암이 급격하게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과거와 달리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초경이 빨라지고, 또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거나 자녀를 소수만 낳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월경을 경험하는 횟수가 3-4배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도한 세포분열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다가 여성암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의학의 시각에서 암의 발생 이유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암을 예방하기 위해 턱없이 비싼 건강식품이나 비법 등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노력을 통해 내 몸에 존재하는 암 발병 가능성을 가진 유전자의 존재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아가 약해지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암이 발생하는 것은 인류가 유전자 속에 가진 정보일 수 있다.

암을 두려워하고 암에 걸렸을 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정신적 충격에 방황하지 말고, 암은 우리가 자연에서 선택받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 생각하고 달가운 마음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사고를 가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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