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드러낸 정부

세종시를 백지화시키려는 정부여당의 최근 행태를 보면 안타까움이 지나쳐 분통이 터진다. 이는 내가 충청도민이어서만은 아니다. 아무리 한국정치에 금도(襟度)가 없고 정치인이 존경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 대통령선거시 공약으로 내건 것은 물론, 불과 4개월전인 6월에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던 이명박대통령의 약속은 어디 갔는가. 이러고도 어떻게 국민에게 대통령과 정부를 믿고 살라고 할 수 있으며,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칠 수 있을까. 애초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던 말을 바꿔 무슨 일이 있어도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믿은 게 잘못이었던가. 과거 충청도출신 고위 정치인이 '충청도 핫바지'론을 주장해서 지역민들의 마음을 매우 상하게 한 적이 있지만, 지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로 세종시건설의 '원안 전면 수정'을 내비쳤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기사제목은 『mb "대통령양심상 세종시 원안대로 하기 어렵다"』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동안 조중동을 동원해서 슬금슬금 불가론을 퍼뜨리고 충청도출신 국무총리, 국회의원을 동원해 한 두 마디씩 흘리다가 급기야는 대통령이 장차관회의에서 자신의 의지를 천명하는 식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중간평가전이 될 10.28.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내년 6.2.지방선거를 앞두고 표걱정 때문에 "원안추진 당론불변"만을 외치며 애써 의사표명을 유보하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이번 보궐선거가 끝나면 청와대와 정부의 뜻에 따라갈 것이 뻔하다. 그러면서 한편에서 여당 사무총장이라는 이는 이번에 충청권에서 한 석이라도 국회의원을 뽑아주지 않으면 충청권 발전은 요원할 것이라고 충청도민을 향해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정부여당과 중앙의 거대언론은 짝짜꿍이 되어 이 문제를 마치 충청도민의 민원인 냥 부각시키면서 불가론을 편다. 정부부처를 나누어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은 국력의 낭비고, 자족도시도 인구 50만으로서는 안 돼 유령도시가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그래서 충청도민이 납득할 수 있는 다른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이런 불가론은 이미 이 계획이 처음 입안 될 당시인 2005-2006년 지간에 모두 검토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충청도민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확실하다. 세종시건설은 충청도민에 대한 공약사항의 문제가 아니라, 박정권 이래 수십년간 논의되어온 수도권과밀화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최고의 장기국가정책이다. 헌법소원까지 겪으며 여야가 합의한 법률에 근거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이 중심이 된 복합도시라는 원안대로 되지 않으면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중요한 대목인 혁신도시·기업도시도 몽땅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 수십년간 유지돼 온 수도권그린벨트와 수도권공장총량제 완화를 통해 다시 수도권과밀화를 부추기는 수도권중심정책으로 회귀하고 세종시 백지화를 시도하는 것을 보노라면, 국민들이 기대했던 국가균형발전은 도루묵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기내에 4대강개발이라는 토목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나 수자원장기계획 같은 중요한 절차를 대충 넘기는 등 조급함을 드러내니 더욱 안타깝다. 이렇게 나라의 기본적인 중요정책이 이렇게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하면 국가장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살까. 세종시 건설이 전 정권이 수립한 계획이라서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라면, 현 정권도 이미 임기가 반이나 지났고, 이런 식의 정치행태를 계속할 때 결국 자신들의 정권유지 또한 쉽지 않을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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