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2장 달 그림자

▲ <삽화=류상영>

"형님 말씀을 듣고 봉께 제관을 하는 것도 영광이구만유. 그랍시다 머. 지가 고사는 책임 질 모냥잉께 막걸리나 들쥬."

"냘 떡국 드실 때 고기 자시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쥬?"

제관으로 선정이 되면 고기 음식을 먹거나 부부 관계를 해서도 안 된다. 황인술은 변쌍출이 부부관계를 할 리는 없을 테고, 내일이 설이라 고기를 입에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짐을 받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사를 지내고 나믄 돼지고기는 실큰 먹을 틴데 냘 하루를 못 참을까."

모산에서는 설 기간 동안 고기를 입에 못 대는 제관에게는 돼지를 잡아서 앞다리를 통째로 주는 전통이 있다. 다들 살아가는 것이 그만그만해서 잔치 때를 제외하고는 고기 맛을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변쌍출은 빈 잔을 황인술에게 내밀며 입을 짭짭 거렸다.

"제관은 정했응께 비용을 얼매씩 각출을 해야 하는가가 남았구만유. 올게는 돼지 백오십 근 짜리 한 마리 값이 얼맨지 모르겄지만 작년츠름 돈 걱정은 안해도 되겄슈. 부면장님이 돼지는 내신다고 했응께."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황인술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머여, 군수 출마라도 하는가?"

제관으로 선정이 된 변쌍출이 별 일도 다 있다는 얼굴로 황인술에게 물었다.

"그건 자시 모르겄고, 고사 때 돼지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은 틀림읎슈. 그랑께 올게는 집집마다 쌀 두 되 씩만 내믄 고사는 푸짐하게 지낼 거 가튜."

"세상 오래 안 살아도 별 일이 다 생기는 구먼. 워짠 일로 부면장이 돼지를 낸댜. 백오십 근짜리를 살라믄 못 줘도 쌀 두가마니 값은 쳐 줘야 할낀데. 아들 낳은 턱으로 돼지를 내 놓으시는 건가?"

"내 말이 바로 그 말여. 당장 돼지 한 마리를 낸다고 큰소리를 쳤으믄 면장님하고도 말이 오갔다는 야긴데. 면장님 승질에 아무런 이유도 읎이 돼지 한 마리를 내 놓치는 않을꺼잖여."

"허허, 걱정도 팔자구먼. 설마 돼지 한 마리를 내 놓고선 난중에 돈 내 놓으라고 할까. 공짜로 주는 돼진께 고사나 잘 지내믄 우리 할 일은 끝낭겨."

오씨가 김춘섭과 박태수의 말을 끊으며 별 걱정도 다 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형님 맘 한븐 편해서 좋겄네. 하지만 시방은 형님 말대로 고사나 잘 지내는 수 벢에 읎슈. 부면장님이 돼지 한 마리를 내 놓는다고 할 때 지가 한두 번 물어 봤겄슈? 돼지를 내 놓으시는 건 동리를 대표해서 쌍수를 들어서 환영 할 일이지만, 대관절 이유가 머냐고 말유? 그랑께 그냥 내 놓고 싶어서 내 놓는 거 라믄서, 만약 자꾸 물어 보믄 돼지를 안 내 놓겠다고 하시지 뭐유. 그런 판국이니 더 이상 물어 볼 수가 읎드라구유. 그라고 가만히 생각해 봉께 시간이 지나믄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알게 될 날이 올 거 가튜. 그랑께 그 문제는 그릏게만 알고 있으믄 되겄슈."

황인술은 이동하가 삼 개월 뒤인 5월 2일에 있는 민의원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동하가 확실하게 결정을 할 때까지는 비밀에 붙이라는 엄명이 있어서 능청을 떨었다.

민의원 선거는 1954년 5월 31일 시작된 제3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1958년 5월 2일에 만료되는 것과 관련해서 민의원 선거법에 따라 1958년 5월 2일 실시되는 국회의원 총선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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