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찾아서'를 주제로 한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닻을 내렸다. 오래간만에 산바람 강바람 마주쳐 억새꽃 휘날리는 늦가을 들녘을 달렸다. 눈을 감으면 솔바람 억새바람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눈을 뜨면 수천개의 은빛 억새들이 이리저리 휘날리며 바스락 거리는 모습이 찬연하다. 먼 길 달려온 햇빛은 갓 수확이 끝난 논두렁 밭두렁에 흩날리고 있고, 그 하늘빛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발걸음 잠시 멈추고 들녘을 향해 고운 시선을 보낸다.

고즈넉한 한낮, 숲에서 들리는 청아한 새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거짓의 옷을 훌훌 벗어버린 숲에서는 구수한 흙냄새가 나고 마른 풀잎들이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거린다. 움직이는 것이 어디 바람뿐이겠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상처받고 흔들리는 가녀린 존재다. 강물도 끊임없이 흐르고 뒷산의 오래된 소나무는 아픈 상처를 안고 사시사철 변화의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대자연의 모든 사물들이 흔들리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썩기 때문이다. 사람도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거나 과거의 추억에만 몰입하면 희망이 없는 법이다.

어린 시절에 '마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 것으로 기억된다. 한 여름 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옆집으로 놀러가거나, 고구마나 감자를 한 소쿠리 챙겨 이웃마을로 놀러갈 때 즐겨 사용했던 충청도 사투리다. 변변치 못한 교통수단에 전화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엄마 아빠 손잡고 마실가는 것은 문화소통과 정보습득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웃집의 가정사를 샅샅이 듣고 올수 있으며, 옆 동네의 다양한 소식과 이웃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어디 이 뿐인가. 인간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정감을 나누는데도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가슴으로, 눈으로, 온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최적의 소통 수단이었다.

우주여행이 현실화 되고 교통과 통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요즘에도 마실가는 문화가 있을까. 나는 단연코 '있다'라고 주장한다. 바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마실가는 것이다.

아래 위집으로, 아래 윗동네로 마실가던 시대가 아니라 이웃나라로 마실가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을 보라. 지도 한 장만 들고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맛본다. 현장에서 만나는 낮선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살아있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다.

이번 공예비엔날레에서 기록될 만한 사건도 마실문화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시민홈스테이였다. 해외 작가들에게 공예비엔날레와 청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기획한 홈스테이프로그램에는 청주시민 50가정이 참여했다. 캐나다 미국 일본 핀란드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작가들이 시민 가정에서 숙박을 하고 공예비엔날레를 관람했으며 청주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을 맞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가뜩이나 신종플루 때문에 불안감을 갖거나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등 산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하나 둘 입국하고 시민 가정에 짐을 풀면서 그간의 우려는 말끔하게 씻어졌다. 한국인의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과 외국인의 아름다운 배려가 돋보였다. 홈스테이 가정이 함께 모여 외국작가들을 위한 작은 파티를 열어주고 서로의 문화,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문화로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캐나다에서는 내년 1월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한-캐나다공예특별전>기간 중 한국 방문객을 위해 홈스테이를 운영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 어떤 조건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직 이방인들에게 청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 시민들이야 말로 민간 외교관이며 청주의 살아있는 자긍심이라 할 수 있다. 청주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아름답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홈스테이 시민이다. 이제, 역동적이고 활기찬 도시, 글로벌사회의 주역이 되고 싶다면 마실문화와 홈스테이를 특화해야 할 것이다.

▲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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