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호론, 고향 사람도 납득 안돼

▲ 김헌섭 교육문화팀장
중국 은나라 말기 여상(呂尙)이 창(昌)과 함께 주왕을 몰아내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그 공로로 영구라는 곳에 봉해졌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그를 포함해 5대 손 모두 주나라 천자의 땅에 장사 지내졌다.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이 말한 '고지인유언 왈호사정구수인야(古之人有言 曰狐死正丘首仁也'에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유래됐다고 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을 일컫는 것이다. 요즘 세종시 문제로 들끓고 있는 민심에 편승해 지역에서 많이 회자되는 고사성어로, 고향에 파문을 일으킨 정운찬 총리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총리 지명 당시 누구보다 축하한 것은 충청권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물론 지역 언론도 일제히 환영했고, 장밋빛 기대를 쏟아냈다. 다른 이유 없이, 단지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비효율성'을 거론하며 세종시 원안 추진을 부정해 논란을 일으키더니, 지금은 충청권은 물론 온 나라를 '세종시 정국'의 혼란에 휩싸이게 만든 장본인이 됐다.

얼마 전 끝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그를 지켜본 충청권 주민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비참해졌다. "수정 보완안을 국민 앞에 내 놓았을 때 국민이나 충청권 주민들이 거부하고, 원안대로 하자고 하면 원안대로 하겠다"고 했다가 하룻만에 "국가적 이익의 장기 측면에서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 뿐 만이 아니다. 두차례나 공개 경고를 받았고, "이런 총리는 처음 봤다"는 말까지 들었다. 압권은 '731부대' 관련 발언이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으로부터 "731부대가 뭐냐"는 질문을 받자 "항일독립군인가요?"라는 놀라운(?) 답변을 했다. 뒤이어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 질문 시간에 "급히 답변하느라 문장을 마치지 못했다"며 "731부대는 일본이 항일독립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던 세균전을 위해 운영했던 부대"라고 정정했지만 논란을 황급히 무마하려는 시도로 비쳐졌을 뿐이다. 세종시 문제로 설전을 벌이다가 "통일 독일도 본에서 베를린으로 행정 부처를 옮겼다가 원상 회복을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본과 베를린 거리가 얼마인 줄 아느냐", "본의 인구가 얼마냐"고 구체적으로 반박하자 제대로 답변 하지 못했다. 결국 "경제학만 공부하고 인문학은 공부 안했네", "팩트 파인딩(사실 확인) 좀 하고 오시라"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일각에서 총리로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국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옹호론'도 있지만 고향 사람들조차 납득하지 못하는데 누가 동조를 하겠는가. 이젠 그가 충청 출신이라는 사실마저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도 오르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세종시를 행정중심도시에서 기업도시로 바꾸기 위해 현행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법에 따라 부처를 이전해야 한다는 충청권과 야당, 한나라당 친박계의 반대에도 원안 수정에 나서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세종시는 두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충청권 주민들이 공약한 대통령 당선자들에게 표를 몰아줘 얻은 소중한 결과물이다. 밭이 만들졌으니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고, 거름을 주는 등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할 시점에 '법 개정'이라는 태풍을 맞았으니 충청권 주민이나 친 이계를 제외한 여야 정치권이 뿔이 나도 단단히 났다. 국회 통과도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료를 주지는 못할 망정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이 있서는 안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다. 세종시 비효율성으로 처음 불을 지른 정 총리가 '솔로몬의 지혜'를 내 놓아야 한다. 좋은 머리, 지금이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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