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부푼 부모

그러고 보니 우리 꼬마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였던 것 같다. 아마도 그날은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날로 기억이 된다. 그 해 겨울엔 곰이나 개구리가 한 겨울 내내 동면하는 것 보다 더 오랜 시간을 발표연습에 쏟아 부어놓은 듯했다. 무엇을 연습하는지 물어보아도 비밀이라 하고,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도 비밀이라고 하며, 닫은 입을 도통 열지 않았었다.

발표회가 있는 날, 나는 내 아이보다 더 설레였던 것 같다. 꽃다발도 한아름 품에 안고, 녀석이 좋아하는 사탕부케도 손에 들고 사진기까지 챙겨들고는 아이가 혹시 무대에서 우리 가족을 못 찾을까봐이쪽 자리에도 앉아보고 저쪽자리에도 앉아보며 부산하게 발표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었다.

"다음은 '사슴반' 친구들의 '숲속 동물들의 회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우리꼬마가 등장하는 작은 연극이 시작되었다. 극 중에는 사자도 나오고, 토끼도 나오고, 사슴도, 여우도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누구집 아들 딸인지 어쩜 저리도 귀엽고 깜찍한지 입가에 미소와 가슴가득 뿌듯함이 절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우리꼬마가 보이질 않지? 연극이

한 참 진행이 되어도 아이를 찾을 수 없어 내가 물었다.

"우리 희성이가 왜 안 나오는 걸까? 아니면 혹시 제일 마지막에 해설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까?"

"에이~ 저기 있잖아. 저기 안 보여? 저쪽 뒤에 나무가 희성이잖아"

그랬던 것이다. 우리 꼬마의 역할은 숲속의 나무였던 게다. 대사 한 마디도 없이, 연극이 끝날 때 까지 단 한 발짝도 걷지 않은 채 그렇게 두 팔은 엉성하게 뻗은 나무를 하고 있었다. 코 앞에서 토끼의 귀 한 쪽이 떨어지고, 사자가 자기 꼬리를 밟아 넘어지는 실수를 하여도녀석은 애써 웃음을 참으려는 일그러진 모습조차 하지 않은 채 그렇게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발표회가 끝날 때 까지 나는 여느 엄마들처럼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나무 역할이 창피해서 겨우내 나에게 비밀로 했던걸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담당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어떻게 보고 저런 역할을 시킬 수가 있담. 내일부터 당장 어린이 집을 바꿔야겠어. 이따가 발표회가 끝이 나면 아이에게 뭐라 용기를 줘야하나?'

모든 발표회가 끝나고 나는 아이들이 북적대는 준비실에 들어섰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녀석에게 나는 그만 엄마답지 못 하게 불만을 터뜨렸다. "너는 왜 하필이면 나무역할이니? 사자도 있고, 여우도 있고, 토끼도 있는데... 그리고 연극하다가 아이들이 실수하면 같이 웃기도하고 그러지 무슨 애가 그렇게 무뚝뚝하게 가만 있는거야? 나무역할이 창피했던거 맞지?"

지금 생각해도 대 여섯 살 박이 아이에게 얼마나 철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싶다. 하지만 그 순간 화가 나고 서운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 아닌데... 엄마, 난 나무 역할이 창피하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나는 나무잖아요. 나무가 움직이면 어떻게 해요? 나무는 움직여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되요.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가지에 달린 잎들 속에 우리 반 친구들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적은 것이 있어서 나는 그걸 보고 몰래몰래 알려주어야 해요. 아까 사자가 나를 잘 보려고 하다가 넘어졌잖아요."

그럼 왜 발표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재차 묻자, 아이는 선생님과의 약속때문이었다고 또랑또랑하게 대답을 했다. 아이를 담당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꼬마 덕분에 연극이 아주 잘 되어 듬직하다는 한 바구니의 칭찬을 들으며 민망해진 나는 나오는 길에 나를 보며 씨익 웃는 녀석에게 알밤을 콩 치며 한 마디 던졌다. "잘 났어 정말"

▲ 김미혜 충북대 교수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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