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 모양에 따라 기둥을 밀착시키는 방법

그랭이란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나무기둥이나 돌을 다듬어 서로 맞추면 아랫돌의 생김에 따라 위의 나무기둥이나 돌이 톱니처럼 서로 맞물린 듯이 밀착되는 것을 말한다. 두 부재가 만날 때 어느 한부재의 모양에 따라 다른 부재의 면을 가공해 주는 것으로 이 작업을 '그랭이질' 또는 '그레질'이라고도 한다.

이때 사용 되는 도구가 지금의 컴파스 또는 핀셋처럼 생긴 그랭이칼이다. 주로 대나무로 만들며 끝의 두 가닥이 벌어지거나 좁혀지기도 한다.

그랭이질 방법은 두 가닥 가운데 한 쪽에 먹물을 바른 다음, 다른쪽을 주춧돌에 밀착시키고 나머지 한 가닥은 기둥에 닿도록 한다. 이어 주춧돌의 생김새에 따라 그랭이칼을 한 바퀴 돌리면 기둥에 주춧돌의 울퉁불퉁한 요철모습이 그대로 그려지게 된다. 자귀와 끌을 이용하여 기둥에 그어진 선의 모양대로 밑둥을 잘라낸 뒤 주춧돌에 세우면 들쭉날쭉한 주춧돌과 정확하게 밀착되어 한 몸이 된다.

그랭이질로 세운 기둥은 말 그대로 주춧돌 위에 나무기둥이 자연스럽게 올려진 모습으로, 기둥에 홈을 내고 주춧돌에 단단히 박아서 고정하는 서양의 건축 양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랭이법에서 조상들의 과학슬기를 찾아보자!

대개의 경우 주춧돌 위에 기둥을 올린 것보다 주춧돌에 홈을 내고 기둥을 박은 것이 더 견고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랭이질에 의한 기둥은 건물 전체의 하중을 견디는데 문제가 있을 것으로 여길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재 남아있는 우리의 옛 건축물이나 성곽 그리고 건물의 기단을 보면 기우였음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그랭이질로 기둥을 세운 건물은 지진에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지진이 일어났을 경우 주춧돌에 홈을 내고 기둥을 박은 건물은 건물이 내려앉거나 반파 될 확률이 높은데 비해, 그랭이질로 지은 건물은 주춧돌과 기둥 사이의 공간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충격이 건물에 전달되는 것이 현격히 줄어 건물이 어긋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보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랭이법으로 건축된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이 지진에 상당한 내구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랭이법은 목조 건물을 세울 때만 사용 된 것이 아니고 대형 건물의 기단, 성곽, 탑 등 석축에도 다양하게 사용 되었다. 대형건물의 기단 가운데 그랭이법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이 불국사이다. 불국사의 남쪽과 서쪽에 조성 된 기단부 석축은 자연석과 인공으로 다듬은 석재를 사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석축을 쌓을 경우 아래에 쌓은 자연석의 윗면을 평평하게 깎아서 인공석과 맞추게 되는데 비해, 불국사 석축의 경우 이와는 반대로 인공석의 밑면을 깎아서 자연석의 윗면과 끼워 맞추는 그랭이기법을 적용하였다. 근래에 불국사 기단부에 사용된 그랭이 기법이 내진구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주장되고 있어, 창건이후 지금까지 석축의 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연유가 여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성곽에서도 이러한 그랭이기법이 확인 되는데, 성곽에 사용되는 자연석의 모양에 맞게 윗돌을 다듬거나 완성된 성벽가장 윗부분의 자연석위에 장대석을 올려 마감할 때도 자연면의 울퉁불퉁한 면에 맞추어 돌을 다듬은 뒤 정확하게 밀착 시켰다.

이렇듯 석축에서도 목조건축의 핵심기법을 응용하여 과학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뛰어난 기술을 발휘 하였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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