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성 5부작 기획 전봉관 교수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문학연구자는 `작품 감별`이라는 영역을 박차지 못했다. 작품성이 뛰어나다느니, 긴장도가 떨어진다느니 하는 등의 각종 판단 잣대는 문학을 `문학`과 `통속`으로 걸러내는 일을 한 셈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일군의 문학연구자가 이런 `고유 영역`을 박차고 문화사가로 전향한다. 문학작품인가 아닌가 하는 진부한 질문은 과감히 던져 버리고, 종래의 문학이 버린 지대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통속글`이 급속도로 사료(史料)로 변환되어 읽히기 시작했다.

2003년도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1930년대 한국 도시적 서정시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단과대학 인문사회과학부 강단에 서고있는 전봉관(全峯寬.36) 교수는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소장파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골드러시 현상을 다룬 `황금광시대`(2005)라는 단행본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에는 살인과 스캔들이란 독특한 주제로 식민지시대 경성의 단면들을 조명한 `경성기담`을 선보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1920-40년대 일확천금을 꿈꾼 조선의 투기 열풍을 인물 중심으로 정리한 `럭키금성`(살림)을 선보였다. 18일 만난 자리에서 대뜸 &amp;amp;amp;amp;quot;주변 선생님들이나 동료 문학연구자들로부터 `이게 문학(연구)이냐`을 핀잔을 듣지 않느냐&amp;amp;amp;amp;quot;고 물었더니 &amp;amp;amp;amp;quot;다행히 아직까진 별다른 반응은 없네요&amp;amp;amp;amp;quot;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발굴해 `상품화`한 소재는 독특하며 글쓰기 또한 파격에 가깝다. 더구나 그 시대적 배경이 식민지시대 조선, 그 범위를 더욱 좁히면 경성(京城)의 도시문화라는 점이 국내 출판계에서 주목하는 필자 중 한 명으로 만든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살릴출판사 한 곳만을 고집한다. 박사학위 논문 또한 이곳에서 낼 예정이며, `경성기담` 이후 그 자신이 기획하는 `경성시리즈 5부작` 또한 살림에서 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에서 접촉이 없느냐고 했더니, 본인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으나출판사측에서는 &amp;amp;amp;amp;quot;여러 군데서 접촉하는 것으로 안다&amp;amp;amp;amp;quot;고 말했다.

그의 글 곳곳에서는 `경성`이란 말이 식민지시대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등장한다. 당장 그의 단행본 3권 중 이미 2권이 제목에서 `경성` 탐방을 표방했다. 전교수는 왜 경성에 집착할까? 그 이유에서 식민지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일단을 드러낸다.

&amp;amp;amp;amp;quot;식민지시대, 일제시대, 혹은 왜정(倭政) 시대와 같은 말이 있을 터인데 저는 일부러 피합니다. 그 시대를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런 용어는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경성이란 공간 개념으로써 시간 개념을 치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amp;amp;amp;amp;quot;

이런 그에게 식민지시대 조선, 나아가 경성은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모든 답변은 `다이내믹`이란 한 마디로 수렴된다.

&amp;amp;amp;amp;quot;그 시대는 모든 게 첫 번째인 시대입니다. 우리가 아는 현대의 모든 것이 그 시대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신문학이 등장했으며, 연애와 사랑이란 개념이 나온 시기이며,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 시대 경성은 이런 모든 새로운 것들이 부대끼며 용솟음친 시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시대는 훨씬 더 다이내믹했습니다.&amp;amp;amp;amp;quot;

예컨대 이번 저작에서 다룬 투기 열풍만 해도 &amp;amp;amp;amp;quot;그 시대는 (자본주의가 착근하는)처음이었기에 그에 따른 모순 또한 격렬하게 표출되었지만, 그 모순을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없었으므로 더욱 투기적인 모습을 표출했다&amp;amp;amp;amp;quot;고 말한다.

결국 그가 그리는 식민지시대 조선 경성은 정통 역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억압과 저항으로만 점철된 암울한 사회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이 대목에서 전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amp;amp;amp;amp;quot;일제시대가 암울했다구요? 그건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기억`일 뿐입니다. 이런기억은 식민지시대 조선사람들이 실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왜곡하기 마련입니다. 연애하고 도박에 미쳐 파산하고 투기병이 열병처럼 번진 시대입니다. 식민지시대 경성은 그런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amp;amp;amp;amp;quot;

그가 구상하는 `경성 5부작`의 수순과 주제를 물었다.

&amp;amp;amp;amp;quot;제 첫 저서인 `황금광시대`는 5부작에 들지 않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문학연구자라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했습니다. `경성기담`과 이번 `럭키금성`이 1-2부작이며, 3부작은 자살과 스트레스 문제를 천착하며, 4부작은 탈옥으로 대표되는 범죄 현상이 주제입니다. 마지막 5부작은 아직 주제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제가 다루었거나 다루려는 주제나 소재 모두 기존 전통시대 조선에서는 볼 수 없던 `모던` 현상입니다.&amp;amp;amp;amp;quot;

결국 이런 작업들을 통해 전 교수는 &amp;amp;amp;amp;quot;우리 근대문화의 뿌리를 보고자 한다&amp;amp;amp;amp;quot;고 하면서, 근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예를 통해 들었다.

&amp;amp;amp;amp;quot;정지용의 유명한 시 `향수`가 있지요. 그가 말하는 고향은 그의 `기억`이 구현한 것입니다. 정지용이 농촌에서 계속 살았고, 전근대를 살았다면 저런 향수 같은 시가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농촌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은 자연을 모릅니다. 근대화도시화가 되고 나니까 지금까지 몰랐던 자연을 발견하게 되고, 나아가 도시 그 자체를 성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amp;amp;amp;amp;quot;

이 시대 인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amp;amp;amp;amp;quot;처세서가 많이 팔린다는 것은 인문학이 여전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처세서가 무엇입니까?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아닙니까? 더 나은 삶, 그 답변을 줄수 있는 길은 인문학에 있으며, 그렇기에 여전히 인문학은 살아남을 것입니다.&amp;amp;amp;amp;quot;

그렇다면 인문학은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amp;amp;amp;amp;quot;인문학이 죽어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손을 벌립니다. 그 한편에서는문화콘텐츠라는 분야를 주목하면서 거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데는 반대합니다. 무엇보다 인문학은 글쓰기 양식을 혁파해야 합니다. 논어나 맹자를 보세요. 얼마나 말이 평이합니까 쓸 데 없이 어렵게만 글을 쓰는 바람에 인문학의 글은 몇몇 연구자만이 읽은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amp;amp;amp;amp;quot;

그는 식민지시대 투기 열풍을 다루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대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amp;amp;amp;amp;quot;(부자가) 기부만 많이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럴까요? 기업을 크게 일으켜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부자가 어쩌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람 아닐까요?&amp;amp;amp;amp;quot;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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