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린 마당에 참새가 징검다리 건너 듯 앙증맞은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여름내 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조그만 절구 위에 서너 마리씩 짝을 지어 날아와서는 고인 물에 목을 축이고, 한 마디씩 재잘거리던 녀석들일 게다. 그들이 오늘은 나보다 일찍이 왔다 간 모양이다.

어지간히 오래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결행했다. 짜여진 틀 속에 갇혀 변화 없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런 집을 그리워하게 된 셈이다.

새로이 이사한 집은 산중턱에 정자처럼 생긴 단독주택이다. 위치도 그렇거니와 자연이 베풀어주는 고즈넉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해바라기를 따라온 햇살이 집안 구석구석 머물다 가고, 저녁나절이면 붉게 물든 석양이 하루의 피로를 달래준다. 자연과 더불어 하루를 함께 마감해 주는 것 같아 아파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맛이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저녁상을 물리면 옥상으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본다. 멀리 무심천변은 경쟁하듯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서녘으론 덜 가신 붉은 저녁노을이 아쉬운 듯 멈칫거린다. 직장과 육아, 남편 뒷바라지로 분주하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그런대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내일을 설계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옥상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따라가 보니 아래층 일곱 가구 중의 한 곳이었다.

울음이 끊이지 않는데도 다독여 주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문을 당겨보니 잠겨 있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만 더할 뿐 기척이 없었다. 그런데 창문 쪽으로 손을 대보니 열려지는 것이 아닌가. 어찌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아이의 울음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닌 듯했다. 할 수 없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는 더욱 자지러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어르고 달래기를 얼마였던가. 한참만에야 겨우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저도 힘에 겨운지 잠이 들었나 싶었다.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아이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감한 일이었다. 아래층과는 별채나 다름없지 아니한가.

그러구러 밤 아홉시가 넘었다. 그제서야 아이의 엄마가 귀가했다.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처음 대하게 되는 얼굴이었다. 아이 엄마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이를 받는 그녀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사는 게 얼마나 고생스러우랴 싶었다. 내 이야기조차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하루하루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간다고 했다. 일터가 아파트 짓는 공사판이라 돌이 채 안 된 작은 아이는 업고 다닐 수밖에 없고, 네 살 박이 큰아이는 그럴 수도 없다고 한다. 공사장 여건상 혼자 놀다가 다칠까 염려되어 집에 두고 간다고 했다. 아이가 눈에 밟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눈이 오기 전까지는 혼자 집 앞마당에서 놀기도 하고 방에서 혼자 장난감으로 하루를 달래기도 하지만, 눈이 많이 쌓인 날은 안심이 되지 않아 아이를 방에 두고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온종일 혼자 놀다가 울다가 지치면 자고, 깨면 방문을 계속 두드리면서 울어댄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행복에만 몰두했던 것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그 동안 옥상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도 불 꺼진 방에서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모처럼 주택을 마련한 만족감과 바뀌어 가는 계절 풍경에만 젖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웃을 배려할 생각은커녕 오직 마당 꾸미기에만 관심을 쏟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주택가의 마당은 규격화된 테두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 모두들 한 치 마음의 여유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삭막할 수 밖에 없다. 이웃을 불러 함께 이야기꽃을 피울 여유는 한낱 생각뿐, 마치 부의 상징이나 되듯 제 울타리만 아름답게 가꿔 놓으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나도 그 자리에서 한 치도 멀지 않았으니 어찌하랴.

언제쯤 내 마당에도 진정한 봄이 오려나 싶다.

▲ 김정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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