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봄이 되면, 각 학교는 새 학기를 시작한다. 이를 위한 준비로 매년 2월에는 졸업식과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다. 보낼 사람은 보내고, 새로 올 사람은 새롭게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인생에서 통과하는 각 단계의 시작과 끝은, 나름대로 의미와 정리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의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뿌려대는 졸업식장을 통과해 대학의 오리엔테이션에 온 학생들은 또 폭력적인 음주문화에 접하게 된다. 술 때문에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해 왔다. 그러다보니 각 대학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이즈음에는, 또 어디에서 불상사가 생길까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문제는 그러한 오리엔테이션을 경험한 학생들이 다음 새내기들에게도, 아무런 고민 없이 전통이라는 탈로 둔갑시켜 똑같은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새 출발의 의미를 찾는 졸업식을 위해, 일부 고교에서는 가운을 준비하여 졸업식을 진행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그랬더니 교복을 찢는 대신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비율도 훨씬 늘고 분위기도 경건하고 좋았다고 한다. 이렇듯 학교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저 학생들의 일이니, 자율적으로 하도록 놔둔다는 미명하에 '전통'과 '관행'이라고 폭력과 비상식이 지속되는 것이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모든 일에는 그러한 현상을 묵과하도록 버려두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개선을 위한 시스템 또한 존재할 것이다. 보다 건강한 대학 문화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오리엔테이션의 주체는 학생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학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알아서 한다고 말하면서 대학 본연의 임무를 유기시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대학의 주체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도 함께 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의 자율이라는 핑계로 본인들의 의무를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의 내용은 대학생활 안내이어야 할 것이다. 대학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그 전공을 이수하면 어떤 미래가 준비될 수 있는 지, 구체적인 체험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싶다. 기합과 술, 여장남자의 구태의연한 장기 자랑에서 탈피하여, 선배의 직장을 탐방하거나, 선후배가 모여 동일전공에 대한 활동을 구체적으로 체험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어떤 학교에서는 기념 헌혈 행사도 한다고 한다. 봉사 활동 현장에서 선후배를 만나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모든 일들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 주었으면 한다. 후배들의 오리엔테이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주는 직장 문화도 꼭 필요하다.

이러한 여러 조건에 적합한 장소가 각 대학의 기숙사이다. 오리엔테이션은 말 그대로 대학생활에 대한 안내이니 기숙사에서 진행하는 것이 정답이다. 앞으로 생활할 대학 곳곳을 직접 탐방하면서 안내하기도 쉽다. 그동안 왜 좋은 학교의 숙박 시설을 놔둔 채,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학교 안내를 해 왔는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의 질도 미리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대학의 식생활 문화도 개선의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기숙사 시설도 개선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첫인상을 좋게 하려고 노력하고 이 수준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기숙사에는 원래 주류 반입이 허용되지 않으니, 술로 인한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학생들과 교직원도 참여하기 쉽다. 전체 프로그램은 전공 관련 직장 체험이나, 학교 대청소 프로그램은 어떨까? 자신들이 사용할 학교이니 같이 청소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청소를 해보면 시설을 아끼는 마음도 생긴다. 이것이 "전통"이 된다면, 학교는 자꾸 자꾸 좋아질 것이다. 구석구석 깨끗해지고, 애교심도 생길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학생회와 교직원이 함께 마련해 주길 바란다. 제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2월에는 음주로 인한 사고 소식보다는, 각 대학의 새내기들 덕분에 대학 곳곳이 깨끗하게 정비되고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졌다는 좋은 소식들로만 가득하기를 빌어 본다.

▲ 윤석환 충남도립청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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