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19년 3월 1일에 일제에게 식민지로 있었던 한국 국민이 대거 봉기해서 독립 만세운동을 펼쳤던 일이 있다. 우리는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삼일절이라는 공휴일을 만들어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삼일절에 대해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공휴일로 노는 날이라는 개념이 있을 뿐이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상당수가 과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들의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 제대로 배우지도 않을뿐더러, 당시 동아시아를 유럽 열강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본이 나서서 합병시켰다는 왜곡 역사 교과서와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일본의 어느 정치가 가운데는 과거 조선을 병합시킨 것은 조선을 현대 문명사회로 발전 시켰다는 망언을 하고 있다.

식민시기에 그들이 했던 약탈과 억압의 진상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시침을 떼고 왜곡시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식민 초기에는 가공할만큼 약탈적인 정책을 썼다. 이를테면, 조선 여성들을 창녀로 전락시키는 유곽을 각 도시마다 만들어 장려했는데, 그것은 지조가 높은 조선여성들의 기개를 꺾는 의미도 있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술과 여자로 타락시켜 민족정기를 상실하게 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었던 것이다. 조선인 의식의 상실은 아편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아편 밀매와 재배 및 복용을 합법화시켜 놓은 것이다. 그렇게 되자 조선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조차 아편을 쉽게 구입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그 정책은 곧 철회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국민들에게는 고등 기술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목수나 노동꾼 등의 하급 직종에 안주하게 했다. 80% 이상이 농부였던 것을 생각하면, 농업 정책도 하급 정책을 썼다. 저미가 정책을 써서 농부들이 힘들게 일을 해도 쌀값을 동결해서 생산성 저하를 초래케 했고, 일본 국책 회사를 차려 땅을 사들여 조선의 농부들 대다수가 소작인 화하는 작업까지 하였다. 1920년 대 전후에 일본의 미곡상들이 데모를 한 일이 있다. 이유는 조선에서 들여오는 쌀값이 너무 싸서 자기들이 생산하는 미곡을 팔 수 없다는 항의였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강원도와 충청도 일원에 일제시기에 놓았던 철길의 흔적이 있다. 시민들의 교통망을 확충하기 위해 건설한 철로가 아니라, 각종 목재나 광물을 체취해서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운송수단으로 놓은 것이다.

1919년 3월 1일에 전국적인 만세 운동이 펼쳐지자 당시 일본 당국도 당황을 했는지 정책이 약간 바뀌어 억압통치에서 문화통치라고 기치를 내세웠지만, 사상 탄압이라든지 종교 탄압, 그리고 각종 정책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이 약탈과 착취, 억압이 계속되었다.

삼일절은 단순히 우리가 식민지였던 현실에서 독립을 하기 위해 만세운동을 펼쳤다는 기념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나라가 약하면 지금도 형태를 달리해서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과 탄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도 그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는 강한 나라가 되자는 결심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지도자들은 뭘 하고 있는지,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돌아가서 의사당에서는 싸움질이나 하고, 대권을 향한 줄서기와 어떤 소리를 해야 표를 많이 모을 것인가만을 연구하고 있으면, 이 나라의 장래가 과거 식민지시대였던 때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정현웅ㆍ소설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